정의
조선 후기에, 공조판서,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인조즉위 이후 아버지와 함께 정사공신(靖社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 이어서 사헌부감찰에 제수되었고, 군자감판관 · 충훈부도사 · 선공감첨정 · 홍천현감 · 김제군수 등의 내외직을 거쳤다.
1640년(인조 18)에 첨지중추부사로 심양관(瀋陽館)에 파견되었고, 돌아와 1645년 수원부사가 되고 능풍군(綾豐君)에 봉해졌으며, 그 뒤에 한성부좌윤 · 공조참판 · 총융사 등을 거쳐 공조판서에 이르렀다.
이후 병을 핑계삼아 관직에서 물러나 향리에서 지냈으며, 1675년에 부원군(府院君)에 봉해졌다. 인조반정에 처음부터 깊이 관여하여 반정하던 날 인조를 사저에서 직접 모셔 즉위하게 하였다. 그 공으로 정사공신 3등에 녹훈되었다.
병자호란 이후에 심양에 파견되어서는 울분을 참지 못하여 문밖 출입을 일체 하지 않았다.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송자대전(宋子大全)』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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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본관 및 가계 : 『국조인물고』 권60, 구인기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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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공신 녹훈 : 『인조실록』 3권, 1623년(인조 1) 윤10월 18일. "정사훈(靖社勳)을 감정토록 명하여 1·2·3등 53명을 녹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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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시호 추증 : 『숙종실록』 5권, 1676년(숙종 2) 4월 9일. "능풍 부원군 구인기의 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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