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능성(綾城). 1399년(정종 1) 형조의랑에 이어 1407년 호조참의가 되었다. 이 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민무질(閔無疾)이 왕족간의 이간을 꾀하였다 하여 하옥됨에 이와 관련되어 국문을 받았다.
그해에 1406년 이후 우리나라에 도망온 중국사람의 쇄환상황(刷還狀況)을 알리기 위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으며, 돌아올 때 명황제가 태종에게 하사하는 서적을 받아왔다.
1416년 호조참판이 되었는데, 아우 구종수(具宗秀)가 왕명을 어기고 여색으로 세자를 자기집에 유인하여 향응을 베푸는 데 참석하여 갖은 방법으로 아첨하며 세 형제의 뒷날을 부탁한 사실이 발각되어 이듬해 아우 구종유(具宗猷)·구종수와 함께 대역죄인으로 참수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