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직후인 1945년 9월초 좌익·우익·중립의 3파로 대립하고 있던 『해방통신(解放通信)』의 창간동인 중 좌파를 축출한 뒤 중립계 인사들이 우리나라 최초로 창설한 통신사이다. 조직은 주간에 최기섭(崔基涉), 편집부장에 전홍진(全弘鎭), 취재부장에 원경수(元瓊洙)의 진용으로 출범하였다.
그러나 당시 일본인이 소유하였던 각 기관의 시설을 접수하던 미군정당국이 시설과 기재를 언론인 김동성(金東成)과 남상일(南相一)에게 위탁함으로써 국제통신의 간부들은 10여 일 만에 물러나고 말았다.
위탁받은 두 사람은 『국제통신』 명칭으로 계속 통신을 발행하다가, 11월 1일 사장에 미육군 제24군단 통신대장인 대령 글래스(Glass, A.)가 취임, 김동성 주간 아래 군정관리통신으로 변신하여 일간 3편의 『국제통신』을 발행하였다.
그러나 군정당국의 재정지원을 받지 못하고 군정기관통신이라는 배경 때문에, AP통신 등 세계적 외국통신과의 계약을 맺지 못하였다.
경영난에 봉착하던 중 간신히 AP통신과 계약은 체결하였으나, 숙련된 인원과 통신기재를 갖추지 못하여 어려움을 겪다가 『연합통신(聯合通信)』과 합병을 교섭, 그 해 12월 20일자로 양사가 합병하여 『합동통신(合同通信)』을 창간하였다. →합동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