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4일 서울 종로 2가 장안(長安)빌딩에 설립한 조선통신사(朝鮮通信社)에서 창간하였다. 사장에 김승식(金丞植), 부사장 겸 발행인에 김용채(金容彩), 편집국장에 이종기(李鍾棋)였다. 창간 당시에는 라디오수신기로 외신을 받아 번역한 『라디오 외신』과 내신만으로 통신을 발행하다가, 같은 해 10월 27일 UP통신사와 수신계약을 체결함으로써 한국에 최초로 외국통신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1945년 12월 20일 『합동통신』이 AP통신사와 수신계약을 할 때까지 UP통신이 제공하는 외신을 독점, 공급하였다. 1945년 12월 27일 밤 입전된 모스크바3상회담의 조선신탁통치 기사 및 내신보도와 관련하여 좌경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우리 나라 최초의 전국신문기자대회를 발기, 주관하여 ‘조선기자회’를 결성하였으며, 일간신문과 통신의 ‘일요일휴간’을 결의하고 『조선연감』을 발간하는 등 광복 후 언론계를 이끌었다. 1948년 10월, 경영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사호를 고려통신사(高麗通信社)로, 통신제호를 『고려통신(高麗通信)』으로 바꾸고 이미지쇄신에 힘썼다.
연말에는 중국의 중앙통신(中央通信, CNA)과 뉴스교환계약을 맺어 재기를 꾀하였으나 경영난으로 1949년 8월에는 다시 『한국통신(韓國通信)』으로 제호를 바꾸었다가 6·25사변으로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