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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 성례식 / 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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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들의 신앙생활을 돕고, 군의 정신전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설치된 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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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장병들의 신앙생활을 돕고, 군의 정신전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설치된 병과.
내용

이 병과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군종 장교들은 성직자로서 각 종교를 대표하며, 군내의 종교적·영적 지도자의 임무를 담당한다. 지휘계통이 분명하고 획일적인 업무를 행하는 다른 병과와는 달리, 각 종교마다의 독특한 관례에 따라 업무를 집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군종 장교들은 각 지휘관의 종교적·도덕적인 부문을 담당하는 참모이지만, 비전투요원으로서 제네바협정을 준수해야 한다. 이러한 제반 이유로 군종장교들은 각기 소속된 종교에 따라 군법사(불교 및 원불교)·군종신부(천주교)·군목(개신교) 등으로 호칭이 다를 뿐 아니라, 각기 별도의 업무집행규칙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군종업무는 종교활동·교육활동·선도활동 등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종교활동이란 장병들에게 신앙적 욕구를 충족시킴으로써 정신전력을 강화하여 사생관과 국가관을 확립시키는 것으로, 군종장교들의 주된 활동이다.

교육활동이란 인격지도교육과 종교교육으로 대별되는데, 인격지도교육의 주안점은 군인으로서의 자질뿐만 아니라, 올바른 민주시민으로서의 성숙된 인격을 갖추게 하는 모든 덕목과 가치관의 교육이다. 또한 종교교육은 각 경전강좌를 통해 종교생활을 지도하여 신앙의 이론적 체계에 대한 이해를 돕고, 그 실천방법을 터득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선도활동이란 넓은 의미에서 장병들의 군대생활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고 복무의욕을 고취시키는 일이다. 이 밖에 군 신자들의 결혼식·장례식 등의 업무와 함께 사회 각 종단과의 협조하에 이루어지는 대민활동을 통해 군·민유대강화에도 일익을 담당한다.

군종 장교들은 대체로 연대급 이상 부대에 배속받아 교회나 법당을 운영하며, 군장병들의 상담에도 응한다. 그리고 종교생활을 원하는 장병들에게 예배·법회·미사 등의 정기 종교의식과 성찬식·영세식·수계식 등의 특별 종교의식을 직접 집행하기도 한다.

우리 나라 군종제도의 시원은 신라의 화랑제도, 조선의 승병활동 등에서 볼 수 있으나, 현행제도는 과거 전통과 무관하게 형성되었다. 즉, 현 제도는 미군의 기독교적 군종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에, 한국의 문화전통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창군 초기에 몇몇 기독교 신자들이 미군부대 안에 있던 군인교회를 그대로 인수하여 운영하다가, 6·25전쟁을 계기로 군종활동의 필요성이 커졌다. 따라서 1950년 9월에 개신교의 한경직·유형기, 그리고 천주교의 케롤 등이 군종제도추진위원회를 조직하고 정부에 정식 청원하였다. 이에 정부는 군에서 지원하는 병참 이외의 재정문제는 각 교파에서 보조받기로 하고, 1951년 육군본부 인사국 안에 군승과(軍僧課)를 설치하였다.

이로써 무급위탁의 성격을 지닌 불완전한 군종병과의 창설을 보게 되었다. 그에 앞서 해군은 1950년 12월에 독자적으로 군목실을 두고 군종업무를 실시한 바 있고, 공군도 1952년 6월에 군종제도의 창설을 보게 되었다. 1952년 6월, 육군은 창설 당시의 명칭이던 군승과를 개신교와 천주교 교단 측의 요청에 의해 군목과(軍牧科)로 개칭하고, 그때까지 무급으로 위탁되어 종군해오던 성직자 139명을 유급문관(有給文官)으로 임명하였다.

1954년 1월에는 당시 인사국 안에 설치한 군목과를 군종감실(軍宗監室)로 승격시키고, 성직자들을 문관에서 현역으로 임관시켜 명실상부한 군종병과체제로 바뀌게 되었다. 공군은 1952년 3월에, 해군은 같은 해 9월에 각각 군종실을 독립부서로 개편한 바 있다.

불교계에서도 1951년 불교종군포교사회(佛敎從軍布敎師會)를 결성하여 군내의 조직적인 활동방안을 꾀하기 시작했으나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 이와 같은 불교계 활동은 정식 군종활동이 아닌 잠정적인 성격의 군종활동에 지나지 않는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따라서, 천주교·개신교의 성직자만으로 구성된 군종활동 체제는 1960년대 후반까지 지속되어 한국의 종교적 상황과는 동떨어져 존재하였다. 이와 같이 군종활동에 기독교만이 참여하게 됨으로써 군의 단결을 저해하는 갈등요인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월남파병에 따라 군의 불교활동의 필요성이 인식되었고, 불교종단측에서도 강력히 요청하여 1968년에 군법사제도(軍法師制度)가 추가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불교계의 참여로 일부 체계를 정비한 군종활동은 1970년대에 들면서 무형전력 극대화의 일환으로 전군의 신자화운동을 전개하였고, 1978년에는 예비군설치령에 따라 예비군군종담당관제도를 신설하여 예비군의 정신전력강화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2007년에는 원불교 군종장교가 처음으로 배출되었다.

한편, 현행 군종활동은 공헌한 점도 많지만 몇 가지 부작용도 지적되고 있다. 우선 모든 종교에 공평하여야 할 국가가 특정종교에만 군내 포교 및 선교의 장을 열어줌으로써,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다른 종교단체들에게는 사회제도적으로 선교의 장을 제한하는 불이익을 준다는 점이다. 실제로, 천도교와 원불교에서는 군종활동에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해달라는 청원을 계속하고 있다.

또, 초창기부터 한국의 다종교적인 문화상황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라는 측면에서도 종교분야의 국가제도화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국가의 특수목적을 가진 공적 집단구성원들을 특정종교만으로 전군을 신자화할 때, 국가적으로 바람직한가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한국군사제도론』(이동희, 일조각,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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