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군목사제 ()

현대사
제도
1951년 설치된 군종제도.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1951년 설치된 군종제도.
내용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캐롤(George Carrol) 신부와 미 감리교 쇼우(W.E.Shaw) 목사는 미8군과 교섭, 6월 27일 일본으로 건너가 맥아더 장군의 극동 사령부 군종과장 이반 베넷(Ivan L.Bennet) 군목과 죤단(John Dahn) 신부를 만나 한국에 진주하는 미군에 종사할 것을 논의하였다.

동년 9월 18일 한국교회측에서도 연합회의를 갖고 장로교, 감리교, 천주교, 구세군, 성결교 등에서 3인으로 구성된 군목제도를 창설하기 위한 추진위원회를 조직하였다. 그 대표로 장로교 한경직 목사, 감리교 유형기 목사, 천주교 정로사 신부 등이 선출되었다.

1950년 9월 19일 대표들은 이승만 대통령을 예방하여 군목 제도 창설을 위한 구체적인 논의를 하였다. 동년 12월 21일 대통령 지시 국방부신 제29호로 연구 논의되었다.

1951년 2월 7일 국본 일반명령 제31호에 의거 육군본부 인사국안에 군승과가 설치되었고, 동년 2월 28일 제1차로 32명의 목사, 신부가 지원 입대하면서 발족되었다.

변천과 현황

(1) 초창기(1951∼1954)

처음 군목들이 입대한 후 무보수 촉탁으로 있다가 문관 시절을 거쳐 군종감실을 설치하였다.

(2) 개척기(1954∼1962)

군종의 신분이 장교로서 확정되었다. 업무규정을 위시해서 군종예산 등이 책정되어 일할 터전이 만들어졌다.

(3) 활동기(1962∼현재)

1970년말 군종감의 계급이 장군으로 인가되었다.

참고문헌

「6.25 한국전쟁과 군종활동」(윤선자,『한국기독교와 역사』14, 2001)
「육군 군종 20년」(『새가정』190, 1971)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