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김관택(金觀澤)은 일제강점기 성모학원 교사, 해성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 천주교 전교사 및 총회장, 민족운동가이다. 1929년 평양 광성고등보통학교를 수료하고, 1932년 강서군 마산본당의 성모학원 교사로 임용되었으며, 1937년 가톨릭조선사에 입사하였고, 평양교구의 전교사(傳敎師)로 평안도 각지를 순회 전교하였다. 해방 이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정주군 부위원장, 조선민주당 정주군 위원장을 역임하였고, 1947년에 월남하였다. 가톨릭 구제회의 한국지부 지배인, ‘성 라자로원’ 창설자, 평양교구 신우회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정의
일제강점기, 성모학원 교사와 해성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 천주교 전교사 및 총회장을 지낸 민족운동가.
인적사항
주요 활동
김관택은 1943년 평안북도 정주군(定州郡) 정주본당의 해성(海星)학교 교장으로 임명되어 교육사업에 헌신하는 한편 정주본당의 전교사 겸 총회장을 맡아 여러 지역에 전교하였다. 정주본당은 주임신부 보어(William Borer)가 1942년 6월 1일 메리놀외방전교회의 모든 선교사들과 함께 미국으로 강제 추방된 후 평안북도 의주군 비현(枇峴)본당의 공소(公所)가 되었다. 김관택은 이때부터 민족주의자들과 관계를 맺어 많은 도움을 주었고, 이로 인해 요주의 인물로 지목되어 일제 당국에 자주 불려가 심문당하였다. 1944년에는 평양교구에서 활동한 미국 국적의 메리놀외방전교회 선교사들과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감금당하였다.
해방이 되자 김관택은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정주군 부위원장을 맡았고, 1946년 조선민주당 정주군 위원장을 역임하면서 반탁운동을 전개하였는데, 북한 공산당이 체포령을 내리자 1947년에 탈출하여 월남하였다.
이후 김관택은 1946년에 설립된 가톨릭 구제회(Catholic Relief Service)의 한국 지부 지배인으로 사회사업을 시작하여 많은 사람들을 면담하고 도움이 필요한 곳을 현지 답사하였다. 1950년에는 가톨릭 구제회 한국지부장인 몬시뇰 캐롤(George Carroll)과 협의하여 오류동에 나환우들을 위한 ‘성 라자로원’을 창설하였으며, 1951년에는 가톨릭 구제회 구호금으로 시흥군(현 경기도 의왕시 원골로 66)에 대지를 구입하여 나환우들이 모여 살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였다.
김관택은 월남한 평양교구 신자들이 1949년 11월에 조직한 ‘평양교구 신우회(平壤敎區 信友會)’의 제5대 회장으로 선임되어 1955년 12월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신우회관을 마련하였다. 평양교구 소속 신학생 후원사업 및 성소 계발, 기금 조성 등 신우회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김관택은 1960년 7월 9일 결성된 서강대학교 후원회의 부회장으로 선임되었고, 1965년 2월 13일 가톨릭중앙신용협동조합의 이사, 1970년 11월 8일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상임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67년 1월 종로본당의 초대 총회장으로 선임되어 1968년과 1969년에 경기도 파주군 광탄면에 교회묘지(현 천주교 종로교회 나자렛 공원묘원)를 마련하는 등 교회를 위해 많은 활동을 하였다. 김관택은 1974년 8월 22일 선종하였다.
참고문헌
단행본
- 한국가톨릭대사전 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2 (한국교회사연구소, 1995)
- 천주교평양교구사 편찬위원회 편, 『천주교평양교구사』 (분도출판사, 1984)
- 『서강대학교 40년사-1960~2000』 (서강대학교 교사편찬위원회, 2000)
기타 자료
- ‘회보-백 신부 별세’, 『경향잡지』 (1942.8.15.)
- ‘중앙신용조합서 연내 서울 각 본당에소 직장조합원 가입 촉진 결의’, 『가톨릭신문』 (1965.2.21.)
- ‘서울평신협, 제3차 연차총회 개최’, 『가톨릭신문』 (1970.11.15.)
- ‘여명 팔십년(19) 교회잡지들’, 『가톨릭신문』 (1973.8.19.)
- ‘평양교구 신우회 회장 김관택 씨 별세’, 『가톨릭신문』 (1974.9.1.)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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