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산사지 석조 비로자나삼존불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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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굴산사지 석불좌상 중 소형불상 정면
강릉 굴산사지 석불좌상 중 소형불상 정면
조각
유적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에 있는 고려시대 삼존 불상.
이칭
이칭
강릉 굴산사지 석불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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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에 있는 고려시대 삼존 불상.
내용

강릉 굴산사지에서 수습된 3구의 불좌상으로 모두 지권인(智拳印)을 결한 비로자나불상이다. 불상 중 크기가 작은 2구는 인근 암자에 이운(移運)하였으며, 이동이 어려운 대형의 불좌상은 보호각을 마련해 봉안하였다. 불상의 크기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원래부터 삼불개념으로 함께 봉안하려 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들 불상 외에도 불두가 없는 석조비로자나불상 1구가 인근 우물의 석재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홍수로 유실되었다. 한 사찰에서 다수의 비로자나불상을 봉안한 사례로는 해인사 법보전에 있는 2구의 목조비로자나불상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원래부터 두 불상을 한 법당에 동시에 봉안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성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굴산사지의 비로자나불상들은 각각의 전각에 별로도 봉안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범일(梵日)국사가 창건한 굴산사에 이렇게 다량의 비로자나불을 모신 것은 사굴산문(闍堀山門)의 성향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불상을 도상적으로 파악하면 3구 중의 가장 큰 좌상과 가장 작은 좌상의 2구는 오른손이 권인, 왼손이 지인이며, 중간 크기의 1구는 반대로 왼손이 권인, 오른손이 지인을 결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오른손이 권인, 왼손이 지인인 경우가 많아서 일반적인 확률이라고 생각되지만, 두 손이 뒤바뀐 지권인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한 사역(寺域)에서 손이 바뀐 두 종류의 지권인이 모두 등장한다는 점은 앞으로 이 연구에 있어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한편, 불상 3구는 크기만 다를 뿐 양식적으로는 서로 같은 특성을 보인다. 우선 머리카락 부분이 강조되어 마치 두건을 쓴 것처럼 보이며, 상체가 매우 크고 어깨도 넓은 것에 반해 목은 상당히 움츠러든 듯한 자세이다. 또한, 결가부좌한 하체는 옆으로는 양쪽 무릎의 폭이 넓지만, 높이가 상대적으로 낮아서 펑퍼짐하게 퍼진 느낌이 든다. 이러한 비례 때문에 상체가 큼에도 불구하고 옆으로만 넓고 높이는 낮아 마치 가슴만 있고 복부는 없는 듯한 짤막한 상체가 되었다. 그런데 야외 현장에 남아있는 불좌상의 경우는 이러한 인체의 불균형이 오히려 불상을 거대한 무게감을 지닌 존재로 느끼게 해준다. 특히 이 불좌상의 머리 위에는 옥개석이 있는데, 이러한 예는 관촉사 석조보살입상이나 강릉 신복사지 석조공양보살좌상처럼 주로 야외 노천에 봉안하는 불상의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다. 만약 현재의 불두 위에 올려진 옥개석이 원래의 부재였다면 이 불좌상이 야외 봉안용으로 조성되었다는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 옥개석이 원래의 부재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불두의 정상에 육계를 대신해 낮은 기둥 받침 형태의 부재가 삽입되어 옥개석을 받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 옥개석을 얹고 있었을 가능성은 크다.

의의와 평가

신라 말 선종 9산의 사찰이 건립되면서 지권인을 결한 비로자나불상이 적극적으로 조성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이후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동일한 양식의 지권인 비로자나불상이 한 사찰에서 동시에 3구가 조성되었다는 것은 주목되는 사항이다. 적어도 이 부분만을 놓고 본다면 사굴산문에서는 고려시대에까지 비로자나불을 중심 존상으로 봉안하고 있었음을 추론해 볼 수 있다.

참고문헌

『강릉 굴산사지 국제학술대회 논문집: 고대도시 명주와 굴산사』(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2011)
집필자
주수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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