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영조의 막내딸 화길옹주(和吉翁主)가 능성위(綾城尉) 구민화(具敏和)에게 시집가자 왕이 그를 위하여 지어준 집으로, 나라에서 재목과 목수를 보내 완성하게 하였기 때문에 궁집이란 별호가 생기게 되었다.
안채는 □자형으로 네 칸의 부엌, 네 칸의 대청과 세 칸의 방과 한 칸의 앞퇴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당시 안채의 전형적인 평면구성을 보이고 있다. 정침 남쪽 좌우의 날개는 방과 곳간이고 남행랑에는 곳간과 중문이 설치되어 있다.
중문은 두 칸으로 만들어 내외벽을 구성하는 여유를 지녔다. 사랑채는 안채의 서남쪽에 있는데, ㄱ자형의 평면으로 두 칸의 방 이외에는 전부를 마루로 깔았다. 간반통 4칸이며, 서남쪽으로 내루(內樓) 한 칸이 부설되었다. 재목이나 경영된 법식과 조성한 기법에서 당시의 숙련된 내용을 감지할 수 있는 자료를 듬뿍 지니고 있다.
또 이런 유형의 집들은 경영된 시기가 밝혀져 있지 않아 연구에 어려움이 있는데, 이 집은 화길옹주가 출가하여 죽을 때까지(1765∼1772) 경영되었을 것이므로 거의 절대연대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
초가는 궁집의 일을 거들던 아랫사람들이 거처하던 집이라 하는데 이것도 초가를 이었을 뿐 조성의 기능은 매우 담대하면서도 견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