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관찰사, 승문원제조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러나 두 사람이 당시 윤임(尹任) 등과 친하며 윤원형(尹元衡) 일파를 공박하면서 야기된 을사사화에 화를 입자 모든 교유를 끊고 오로지 학문에만 힘썼다. 선조가 즉위하자 예조참의 · 장례원판결사(掌隷院判決事)를 역임하고 춘추관기주관(春秋館記註官)이 되어 『중종실록』 · 『인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했고, 춘추관편수관(春秋館編修官)으로서 『명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했다.
이문(吏文)에 밝아 행정 실무에 능했고, 선위사(宣慰使)가 되어 일본 승사(僧使)를 접대하고, 이어 서장관(書狀官)과 동지사로 두번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원접사(遠接使)가 되기도 했다. 외직으로는 성주목사 · 장단부사를 거쳐 안변부사가 되었다가 순무어사 허봉(許篈)의 탄핵으로 체직되었다.
그 뒤 대호군 · 오위장 · 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하며 선정을 폈다. 시문이 높은 경지에 이르러 승문원부제조 · 제조(提調) 및 지제교(知製敎)를 오랫동안 지내며 문한(文翰)을 주관하였는데, 특히 명나라에 오가는 외교 문서를 전담했다.
1572년(선조 5) 김성일(金誠一) 등과 함께 완의록(完議錄)에 올랐고, 광국원종공신(光國原從功臣)에 봉해졌다. 한시에 능해 많은 사람들이 권벽의 시를 즐겼으며, 당대의 명사인 노수신(盧守愼) · 정유길(鄭惟吉) 등도 시문을 높이 평가했다.
50여 년 벼슬 재위 기간 가사를 돌보지 않고 자식의 혼사도 모두 부인에게 맡겼으며, 손님도 거의 맞지 않으면서 오직 시에만 마음을 쏟아 높은 경지를 이루었다. 예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저서로는 『습재집』 8권이 있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 『택당집(澤堂集)』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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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진사 급제 : 『가정22년계묘8월24일생원진사시방목(嘉靖二十二年癸卯八月二十四日生員進士試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6024-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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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六(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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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명조실록 편찬 참여 : 『명종실록』 1권, 편수관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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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권벽 저술 : 『습재집(習齋集)』(한국문집총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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