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세연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 대한제국기
개항기 때, 경상북도 안동에서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한 의병장.
이칭
  • 성대(星臺)
  • 조원(祖源)
인물/근현대 인물
  • 관련 사건민비시해사건|단발령
  • 본관안동(安東)
  • 사망 연도1899년(고종 36)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36년(헌종 2)
  • 출생지경상북도 봉화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성수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개항기 때, 경상북도 안동에서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한 의병장.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성대(星臺). 경상북도 봉화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참봉을 지냈으며, 안동 병진의 정신적 지주 구실을 하였다. 1895년 민비시해사건과 단발령에 격분한 안동지역 의병들은 안동관찰부를 점령하고, 유지호(柳止浩)·김흥락(金興洛) 등 참모진은 권세연을 안동의 의병장으로 추대하였다.

이에 권세연은 격문을 발표하여, 각지의 의병부대와 긴밀한 연락을 취하고 민심을 크게 격려, 고무시켰다. 이 격문에는 침략자 일본에 대한 적개심과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자에 대한 증오심이 설득력 있게 표현되어 있어, 의병규합에 큰 몫을 하였다.

또한, 이것이 계기가 되어 1896년에는 예안의 이만도(李晩燾), 영양의 조승기(趙承基), 문경의 이강년(李康秊)·유시연(柳時淵)·김도화(金道和)·김도현(金道鉉) 등 각지의 의병장들과도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그러나 1월 28일 안동으로부터 도망쳤던 관찰사 김석중(金奭中)이 많은 관군을 끌고 공격하여 의병들이 패배하였다. 권세연은 최후까지 싸워서 한 몸을 바치고자 하였으나, 참모들의 간곡한 권고에 못이겨 피신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3년에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창의견문록(倡義見聞錄)』

  • - 『속음청사(續陰晴史)』

  • - 『종의록(從義錄)』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의병항쟁사』(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84)

  • - 『석주유고』(이상룡, 1973)

  • - 『독립운동사』 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