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가기(可器), 호는 이재(頤齋). 유치명(柳致明)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평생 동안 학문연구와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1879년에 경학(經學)으로 천거되어 선공감역(繕工監役)을 제수받았다. 1881년 스승의 문집인 『정재문집(定齋文集)』을 교감하였으며, 1882년 수직(壽職)으로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에 증직되었고, 1887년에 가선대부(嘉善大夫)와 가의대부(嘉義大夫)로 연이어 가자되었으나 사직소를 올렸다.
1892년에 다시 가선대부로 증직되어 용양위호군(龍驤衛護軍)에 제수되었다. 보수적인 유학자로서 기존의 체제와 가치가 도전받는 것을 싫어하였다.
그를 위해 자신의 해박한 지식을 동원하여 새로운 학설들에 대해 반론을 펴는 한편, 자신의 신념에 입각하여 후학양성에 노력하고 전통적인 미풍양속의 고취 및 전통적인 교육제도의 확충에 진력하였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각지의 서원이나 사우에서 빈번히 강회(講會)를 개최하는 한편, 각지의 효자·열녀·충신들에 대한 이야기를 발굴하여 책으로 엮어내기도 하였다. 저서로 『이재문집(頤齋文集)』 17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