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평중(平仲), 호는 송재(松齋). 할아버지는 찬성사 권단(權㫜)이고 아버지는 영가부원군(永嘉府院君) 권보(權溥)이다.
과거에 급제하여 충선왕을 중국 연경에서 만나 대언(代言)에 발탁되고, 원나라 왕에게 아뢰어 무위장군합포만호(武衛將軍合浦萬戶)에 임명되었다.
1310년(충선왕 2) 밀직부사(密直副使), 1313년에는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에 올랐다. 조적(曺頔) 등이 충숙왕을 모함하여 심양왕(瀋陽王) 왕고(王暠)에게 왕위를 넘기도록 책동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심왕에게 붙었으나 의리를 지켜 변하지 않았다.
변이 평정되자 첨의찬성사에 임명되고, 또 조적이 패하자 충혜왕은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으로 봉하고 부(府)를 열어 요속(僚屬)을 두었다. 충목왕이 돌아가자 기로대신(耆老大臣)들과 원나라에 글을 올려 공민왕을 세울 것을 청하기도 하였다.
권씨는 할아버지 권단 이래 명문가가 되었고 외손녀가 충혜왕 때 화비(和妃)로 책봉되니 권세와 부귀를 크게 누렸다. 임금으로부터 제택(第宅)과 금잔(金盞)이 하사되기도 하였으며 가속들이 죄를 지어도 순군(巡軍)이 감히 처벌하지 못할 정도였다.
특히, 충숙왕이 그의 집으로 거처를 옮겼을 때 국왕으로서도 미치지 못하겠다고 한탄한 것은 그 저택의 호화로움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도를 믿고 뇌물을 받아 청렴하지 못하다는 비난을 들었다. 아버지 권보의 지시로 이제현과 함께 『효행록』을 지었다. 아들로 권염(權廉)과 권적(權適)이 있다. 시호는 창화(昌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