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영가부원군(永嘉府院君) 권보(權溥)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검교정승(檢校政丞) 권희(權僖)이다.
1382년(우왕 8) 청주목사(淸州牧使)로 재직 중 경상남도 고성(固城) 사람 이금(伊金)이 미륵불(彌勒佛)을 자칭하며 뭇사람을 속이고 재물을 사취하자 이에 무당들이 맹신하여 성황(城隍)의 사묘(祠廟)를 걷어 치우고 이금을 부처와 같이 생각하여 복을 비니, 무뢰배들도 덩달아 이에 어울려 제자라고 사칭하고 거짓을 일삼았다.
이들이 이르는 곳마다 간혹 수령까지 이들을 맞이하여 객사에서 자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이 청주에 도착했을 때, 당시 목사 권화는 그 괴수 5명을 체포하고 중앙에 보고하니, 도당(都黨)이 각 도에 통첩하여 그들 무리를 모두 잡아 사형에 처했다.
1384년 전법판서(典法判書)로 동북면안무사(東北面按撫使)가 되었으며, 여러 관직을 거쳐 밀직부사(密直副使)에 이르렀다. 1387년 전주목사(全州牧使)가 되어 원수를 겸하였는데, 왜구와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왕으로부터 술과 비단을 받았다.
1392년(태조 1) 조선이 건국되자 원종공신에 봉해졌으며, 1396년 박자안(朴子安)·신유현(辛有賢)과 함께 도성제조(都城提調)로 내구마(內廐馬) 1필 씩이 하사되었다. 이 해 삼사우복야(三司右僕射)로 강원도에서 왜구를 방비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