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택보(宅甫), 호는 이우당(二愚堂). 아버지는 증사헌부집의 권대기(權大器)이며, 어머니는 흥해배씨(興海裵氏)로 배희도(裵希度)의 딸이다.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10년(광해군 2)에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부장(副將)이 되어 죽령에 진을 치고 있었는데, 강화가 성립되어 적이 물러가 전투에 임하지는 못하였다. 1635년 장릉참봉에 천거되었으며, 그 뒤 사옹봉사·직장 등을 지냈다.
1639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성균관전적에 제수되었으며, 1640년 예부좌랑, 1641년 유곡도찰방(幽谷道察訪), 1646년 강원도사를 역임하였다. 전형적인 청백리로서 조정에서 임금을 모시고 있을 때는 거침없이 직간을 하였다.
당시 문란한 당쟁의 와중에서도 공평하고 명분이 뚜렷한 정책을 펴려고 노력하였으며, 지방관으로 있을 때는 학문을 권장하고 풍속을 순화시키는 한편, 인정(仁政)을 널리 펴서 많은 칭송을 받았다. 저서로는 『이우당문집(二愚堂文集)』 4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