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전라북도 민속자료(현, 전북특별자치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안채를 비롯해 사랑채ㆍ문간채ㆍ부속사 등 5채의 건물로 이루어졌다. 안채는 1853년에 건립되었고, 사랑채는 1773년에 건립된 것을 1875년과 1969년에 중수한 것이다.
집의 배치는 전형적인 상류층의 주택의 공간 구성을 따르고 있다. 내외 구분에 따라 사랑마당과 안마당으로 구분했으며 안채 뒤에는 뒤뜰이 있다. ㄱ자 모양의 안채 전면에 一자형 사랑채가 있고 안채 서쪽에 별채가 직각으로 배치되어 안마당은 ㅁ자형을 이룬다.
안채는 3칸 대청을 중심으로 작은방과 찬방(도장방)이 있으며, 큰방과 부엌이 찬방 전면으로 돌출된 ㄱ자형 평면이다. 3칸의 대청 중 끝의 한 칸은 신위(神位)를 모시는 사당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본래 집 북서쪽에 별도의 사당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작은방을 입식 부엌으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으며 부엌이 있던 자리에는 방을 들였다.
맞배집으로서 박공면에 도리의 뺄목이 충분히 뻗어 나와 단정한 기품을 느낄 수 있다. 사랑채는 4칸 규모의 一자형 팔작집이다. 60cm 높이의 잡석 기단 위에 세웠으며, 2칸의 대청에 이어 윗방, 사랑방이 연이어 있다. 각 실은 툇마루가 있어 서로 연결되며 마루 끝에는 계자 난간을 둘렀다. 뒤쪽 툇간(退間 : 집채의 원칸살 밖에 내어 지은 칸살)은 서고 또는 벽장, 골방 등을 만들었다.
사랑채 동편에는 중문과 외양간, 창고로 이용하는 바깥채가 있다. 본래 중문은 사랑채와 서쪽 채 사이에 있었는데 문이 너무 좁고 지관의 권유도 있어서 현 위치로 옮겼다 한다. 대문도 사랑채 화단 중간에 있는 서문이 본래의 자리였으나 지금의 위치로 옮긴 것이다.
많은 부분이 변화되고 개조되었지만 안채와 사랑채만은 옛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조선 후기 상류 주택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