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의 학자, 박제경·배차산 등이 흥선대원군 집정기의 정치 상황에 대하여 저술하여 1886년에 상권이 간행된 야사서.
개설
내용
서문을 쓴 이수정은 한국 최초로 성서를 번역한 개신교의 선구자이다. 그리고 박제경의 개명(改名)은 박제형(朴齊炯)으로, 책의 내용이나 당시 개화파가 처해 있던 상황 때문에 그렇게 이름을 바꾼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김옥균의 『갑신일록』에는 ‘제경(齊絅)’으로 나타나 있다. 영남의 문인이었던 배차산의 본명은 전(㙉)이며, 차산은 그의 호이다. 이것도 책 서두에 기록된 대로 ‘차산(次山)’이 아니라 ‘차산(此山)’이 맞는데, 그가 자신의 호를 바꾸어 쓴 이유는 ‘제경’이 ‘제형(齊炯)’으로 바뀐 것과 같다.
책의 내용을 보면, 박제경의 글은 주로 흥선대원군의 인물 됨됨이와 그의 정치적인 이면사를 다루고 있다. 그는 개화파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대원군을 당대의 인걸로 묘사하고 있다. 박제경이 이와 같이 대원군을 옹호한 이면에는 당시 일본인들에 의하여 왜곡된 대원군의 평가를 바로잡으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배차산의 평설은 주로 기독교 문명이 한국사에 있어서 어떤 모순을 안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므로 당시 개화파의 기독교관을 이해하는 데에 커다란 도움을 준다. 기독교인이었던 이수정은 그의 서문에서 배차산의 기독교관이 편협하다고 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시각에서 볼 때 배차산은 서구 문명과 한국의 전통 문화 사이에 벌어지고 있던 갈등에 대하여 상당한 혜안(慧眼)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박제경이나 배차산의 기본적인 태도는 서구 문물에 대해서는 친화성을 가지면서도, 기독교 문명에 대해서는 상당한 저항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근세조선정감』상(일본 중앙당, 1886)
- 『근세조선정감』상(이익성 역, 탐구당, 1975)
- 『근세조선정감』상(교회사연구소본, 교회사연구소, 1971)
- 「근세조선정감에 대한 몇 가지 문제」(이광린, 『한국개화사연구』, 일조각, 196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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