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영주 출신.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1906년에 영주에서 김낙임(金樂任)과 더불어 의병을 조직하여 의병장이 되었다. 그뒤 1907년 순흥 일본헌병분견소를 비롯하여 많은 지역을 습격, 큰 전과를 거두었다.
그해 9월에는 단양(丹陽)에서 재차 의거한 이강년(李康秊)의 의병부대에 들어가 의병진의 별초종사(別抄從事)로 활동하였고, 1908년에는 이강년의병부대 종사부(從事部)에서 활동하였다. 충청도 청풍전투에서 이강년이 붙잡힌 뒤 김상태(金尙台)와 의병을 수습하여 선봉장이 되어, 영주·단양일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그 뒤 1909년 7월에 일본군에게 붙잡혀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종신형을 받고 복역하던 중, 옥사하였다.
198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