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불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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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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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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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의 불감.
내용

높이 28㎝.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원래 이 불감 안에는 아미타불좌상과 관음보살입상·지장보살입상의 금동아미타삼존불상이 봉안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아미타불좌상과 관음보살입상만 남아 있다.

기단부를 지닌 이 전각형 불감의 안벽에는 사방에 빈틈없이 압출상(押出像)이 새겨지고 도금되어 화려하고 찬란하다. 지붕 위에는 치미(鴟尾 : 날짐승 꼬리 모양의 장식 기와)가 장식되고 그 중앙에 작은 고리가 달려 있다.

문을 열면, 정면 벽의 압출상들의 구성은 불화를 연상시킬 만큼 회화적이다. 직사각형의 화면 중앙에 높은 연화대좌에 앉은 삼존좌상을 배치하고, 그 주위로 10구의 나한상(羅漢像), 즉 10대 제자가 둘러섰는데, 조선 초기 불화의 특징적인 배치 구도를 보여 준다.

이와 비슷한 구도의 불화로는 효령대군 등이 시주한 부모은중경의 변상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강진무위사극락전 측면벽화인 삼존좌상설법도(1476년경), 후궁(後宮)이 시주한 수종사금동불감불화(1459∼1493년 작)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조선 초기 불화의 구도는 경변상도(經變相圖)에서 유래된 것으로, 특히 이 불감의 정면 벽의 도상은 1465년 무렵에 제작된 관경변상도(일본 지은원 소장) 중의 일부인 설법 장면만을 따로 떼어 내 표현한 것 같다.

불감 안의 우측 벽에는 사자 위에 앉은 문수보살상, 좌측 벽에는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상이 압출되었는데, 아마도 이들의 위치는 서로 바뀐 것 같다. 정면 벽의 10대 제자와 양측면 벽의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의 등장으로 미루어 정면 벽의 본존불은 석가모니불로 추정된다.

불감 밖의 우측 벽에는 합장한 광목천왕과 보검(寶劍)을 든 증장천왕, 좌측 벽에는 보탑(寶塔)을 든 다문천왕과 비파를 연주하는 지국천왕이 짝을 이루고 있다. 뒷면 벽에는 팔부신장(八部神將), 문 안쪽에는 인왕상 등의 신장(神將)이 압출되어 있다.

불(佛)·보살·나한·신장이 묘사된 이 불감의 본존불상인 석가모니불은 머리에 둥근 계주(髻珠)가 장식되고 가슴에 卍자가 새겨졌다. 젖가슴이 처지고 Ω형 모양으로 접힌 왼팔 부근의 옷주름 등은 고려시대 불상과 비슷한 특징을 보여 준다.

이와 같이 본존불상의 형태나 사천왕상의 배치는 고려시대의 특징이 남아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 불감 안에 봉안된 금동아미타삼존불상의 형식과 양식적인 특징은 일련의 수준 높은 15세기 불상의 양식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1450년(세종 32년) 무렵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한국미술사』(김원룡, 범문사, 1973)
「수종사 금동불감의 고찰」(유마리, 『미술자료』 30, 國立中央博物館, 1982)
「조선전기조각양식의 연구 1」(문명대, 『이화사학연구』 13·14, 이화사학연구소,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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