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금동빗장 1개, 금동문고리 1개, 금동못 2개 등 모두 4점이 일괄 출토되었는데, 금동빗장은 그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도금도 잘 남아 있다. 이처럼 금동빗장과 문고리 등이 함께 출토된 예는 극히 드문 편으로, 탑과 부도의 탑신문비장식(塔身門扉裝飾)의 부조로서만 볼 수 있었던 통일신라 문비 형식을 새롭게 규명해준 귀중한 자료이다.
금동빗장은 상부의 양 끝을 연봉(蓮棒)으로 굴곡지게 처리한 장식부와 장방형의 자물쇠 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자물쇠의 앞면에는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와 탱주(撑柱 : 받침기둥)를 조각하여 네 부분으로 나누어지도록 하였다. 좌우 끝부분은 위에서 아래로 가면서 점차 크기를 줄여나가 3단의 계단형으로 되었는데, 맨 아랫단이 날카롭게 돌출되었다. 상단부의 양쪽은 위에서 가로지른 비녀형 장식부와 연결되어 있다. 왼쪽에서 채워물리는 형식으로 그 오른쪽 아랫부분에는 열쇠를 끼울 수 있도록 네모난 구멍을 뚫었다.
문고리는 얇은 원형판 위로 돌출된 중앙부 고리 연결부분에, 원형면을 각지게 처리한 타원형 손잡이를 끼운 형식이다. 특히 이 손잡이 원형판의 앞면에는 유려하고 섬세한 선각(線刻)으로 초화문(草花文)이 장식되었다. 도금이 거의 대부분 탈락되었고 중앙부 손잡이 접합부분에 부식이 심한 편이나 무늬는 뚜렷하다.
못은 가운데 구멍을 뚫어 태환형(太鐶形) 고리로 된 머리 부분과 짧은 목 아래로 박히는 첨부(尖部)로 구성되어 있다. 1점의 보존상태는 양호하여 도금이 잘 남아 있으며, 나머지 1점은 부식과 손상이 심한 편으로 부분적으로 도금 흔적만이 보인다. 특히 이 못들은 박히지 않는 부분인 머리와 목 부분에는 도금이 되어 있고, 그 아래 박히는 부분에는 도금을 하지 않았다.
이 유물들은 전흥법사염거화상탑(傳興法寺廉居和尙塔)의 탑신 장식에서 보이듯이 빗장 밑으로 2개의 고리가 좌우로 부착되던 당시의 전각문에 사용되었던 것이라 생각된다. 빗장의 형태가 옆으로 길며 장식이 단순하고 끝이 살짝 반전된 비녀형 장식부 등으로 미루어볼 때 통일신라 중기경의 제작이라 여겨진다.
더불어 염거화상탑, 석남사부도 등 일련의 부도나 화엄사사사자삼층석탑(華嚴寺四獅子三層石塔), 영천신월동삼층석탑(永川新月洞三層石塔)의 문비 장식들과 비교해 볼 때 거의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문비빗장의 길이가 짧아지면서 복잡한 장식이 첨가되는 880년(헌강황 6) 제작의 보림사보조선사창성탑(寶林寺普照禪師彰聖塔)보다는 이른 형식으로 보인다. 특히 문고리 전면에 장식된 초화문은 매우 유려하고 섬세하여 그 시기의 공예기술을 잘 반영해 준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