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자물쇠 일괄 (자물쇠 )

목차
관련 정보
금동 자물쇠 일괄
금동 자물쇠 일괄
공예
유물
문화재
통일신라시대의 금동 자물쇠 일괄.
이칭
이칭
금동빗장일괄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보물(1984년 08월 06일 지정)
소재지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55길 60-16, 삼성미술관 리움 (한남동)
정의
통일신라시대의 금동 자물쇠 일괄.
개설

198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금동빗장 1개, 금동문고리 1개, 금동못 2개 등 모두 4점이 일괄 출토되었는데, 금동빗장은 그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도금도 잘 남아 있다. 이처럼 금동빗장과 문고리 등이 함께 출토된 예는 극히 드문 편으로, 탑과 부도의 탑신문비장식(塔身門扉裝飾)의 부조로서만 볼 수 있었던 통일신라 문비 형식을 새롭게 규명해준 귀중한 자료이다.

내용

금동빗장은 상부의 양 끝을 연봉(蓮棒)으로 굴곡지게 처리한 장식부와 장방형의 자물쇠 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자물쇠의 앞면에는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와 탱주(撑柱 : 받침기둥)를 조각하여 네 부분으로 나누어지도록 하였다. 좌우 끝부분은 위에서 아래로 가면서 점차 크기를 줄여나가 3단의 계단형으로 되었는데, 맨 아랫단이 날카롭게 돌출되었다. 상단부의 양쪽은 위에서 가로지른 비녀형 장식부와 연결되어 있다. 왼쪽에서 채워물리는 형식으로 그 오른쪽 아랫부분에는 열쇠를 끼울 수 있도록 네모난 구멍을 뚫었다.

문고리는 얇은 원형판 위로 돌출된 중앙부 고리 연결부분에, 원형면을 각지게 처리한 타원형 손잡이를 끼운 형식이다. 특히 이 손잡이 원형판의 앞면에는 유려하고 섬세한 선각(線刻)으로 초화문(草花文)이 장식되었다. 도금이 거의 대부분 탈락되었고 중앙부 손잡이 접합부분에 부식이 심한 편이나 무늬는 뚜렷하다.

못은 가운데 구멍을 뚫어 태환형(太鐶形) 고리로 된 머리 부분과 짧은 목 아래로 박히는 첨부(尖部)로 구성되어 있다. 1점의 보존상태는 양호하여 도금이 잘 남아 있으며, 나머지 1점은 부식과 손상이 심한 편으로 부분적으로 도금 흔적만이 보인다. 특히 이 못들은 박히지 않는 부분인 머리와 목 부분에는 도금이 되어 있고, 그 아래 박히는 부분에는 도금을 하지 않았다.

의의와 평가

이 유물들은 전흥법사염거화상탑(傳興法寺廉居和尙塔)의 탑신 장식에서 보이듯이 빗장 밑으로 2개의 고리가 좌우로 부착되던 당시의 전각문에 사용되었던 것이라 생각된다. 빗장의 형태가 옆으로 길며 장식이 단순하고 끝이 살짝 반전된 비녀형 장식부 등으로 미루어볼 때 통일신라 중기경의 제작이라 여겨진다.

더불어 염거화상탑, 석남사부도 등 일련의 부도나 화엄사사사자삼층석탑(華嚴寺四獅子三層石塔), 영천신월동삼층석탑(永川新月洞三層石塔)의 문비 장식들과 비교해 볼 때 거의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문비빗장의 길이가 짧아지면서 복잡한 장식이 첨가되는 880년(헌강황 6) 제작의 보림사보조선사창성탑(寶林寺普照禪師彰聖塔)보다는 이른 형식으로 보인다. 특히 문고리 전면에 장식된 초화문은 매우 유려하고 섬세하여 그 시기의 공예기술을 잘 반영해 준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한국의 미』23 금속공예(정영호 감수, 중앙일보사, 1985)
『국보』5 공예(진홍섭 편, 예경산업사, 1985)
관련 미디어 (2)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