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유물들은 원래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김정희 종가인 김성기(金聲基)의 집에 소장되어 있었으나, 보존 관계상 국립중앙박물관에 기탁, 보관되어 있다. 김정희 종가 유물은 생전에 그가 지니던 인장·염주·벼루·붓의 유물류와 그의 습작부터의 편지·역서(曆書)·필사본·대련(對聯) 등에 이르는 유묵(遺墨), 그리고 독립된 서첩인 금반첩(金槃帖)과 심경첩(心經帖)으로 크게 나누어볼 수 있다.
유물의 종류는 ‘김정희인(金正喜印)’·‘추사(秋史)’·‘양류당년(楊柳堂年)’·‘유간(遺閒)’의 각인이 있는 인장류(印章類) 31과(顆)와, 수정(水晶) 및 보리염주(菩提念珠) 각 1점, 운룡문(雲龍文)·도철문(饕餮文)이 새겨진 벼루와 명문이 새겨진 벼루, 그리고 대·중·소의 모필(毛筆) 7점이다.
유묵으로는 예서대련(隷書對聯) 1쌍과 비문을 필사한 ‘순우장하승비(淳于長夏承碑)’ 14장, 김정희가 70세에 쓴 ‘을미칠정(乙未七正)’과 편지의 필사본인 ‘척독초본(尺牘鈔本)’이 있다. 또한, 역서로 1844년의 ‘상지십년용집협흡(上之十年龍集協洽)’과 1847년의 ‘십삼년정미첩(十三年丁未帖)’, 글씨의 체본으로 사용한 ‘사공도시평첩(司空圖詩評帖)’이 있으며, 그 밖에 필첩(筆帖)과 소재첩(蘇齋帖)이 남아 있다.
그리고 독립된 서첩으로서 금반첩과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의 전문을 해서(楷書)로 쓴 심경첩을 들 수 있다. 더불어 이한철(李漢喆)이 1857년에 그린 김정희 영정(金正喜影幀, 세로 131.5㎝, 가로 57.7㎝) 한 점이 함께 지정, 보관되어 있다.
이 물건들은 모두 종가에서 전해진 물건으로서 습작부터 완형의 서첩에 이르기까지 김정희의 서체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어 그의 서력(書歷) 연구에 훌륭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인장 역시 많은 수가 유존되는 그의 작품 판정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김정희 영정은 제작시기와 제작자를 분명히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영정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