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 용두 토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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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용두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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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말 고려 초기의 용두 장식(龍頭裝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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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통일신라 말 고려 초기의 용두 장식(龍頭裝飾).
개설

198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그 크기와 기본형태로 보아 주3 지붕의 네 귀나 추녀 끝에 끼웠던 주1로 보인다.

내용

목 부분은 방형으로 절단하고 그 속을 비워 끼울 수 있게 하였으며, 나무에 고정시키기 위한 못 구멍이 좌우에 2개씩 뚫려 있다. 전체를 도금하였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 대부분이 탈락되었고 푸른 녹이 많이 덮여 있다.

용은 눈을 크게 부릅뜨고 입을 굳게 다물어 입 밖으로 뭉툭한 윗니가 아랫입술 위로 돌출되어 있다. 턱밑에는 수염이 가는 선으로 얕게 조각되었으며, 길게 찢어진 입 가장자리에는 뒤로 뻗은 별모양[星形]의 지느러미가 붙어 있다.

짧은 코는 들려 콧구멍이 표현되고 콧구멍 안에 돌출장식이 솟아 있다. 약간 불거져 나온 눈동자를 2단의 층단을 두어 생동감 있게 처리한 것은 앞 시대부터 자주 보이던 표현방법이다.

눈 위로 돌출된 눈썹은 각을 이루며 끝 부분을 뒤쪽으로 흩날리듯 뾰족하게 조각되었다. 그리고 그 가장자리는 가는 오목새김선으로 장식되었다. 특히 이마 정수리에 높다랗게 솟아난 뿔은 주2으로 양단이 구분되었는데, 그 윗면은 2단의 층급 주름을 이루고 뒤쪽으로 길게 뻗어가다가 끝 부분이 앞쪽으로 둥글게 말린 고사리 형태를 하고 있다. 아래 뿔은 위의 뿔보다 조금 더 길게 뒤쪽으로 뻗어가다가 안쪽으로 말려 있다.

통일신라 때 제작된 경주 안압지(雁鴨池) 출토의 금동제용두(金銅製龍頭)나 경상북도 영주 출토의 금동용두보당(金銅龍頭寶幢) 등과 비교하여 볼 때 사실적인 면이나 역동감이 부족한 느낌이 든다. 또한 주름 등의 세부장식 표현이 생략적이고 코가 짧으며 뭉툭하여, 용보다는 귀두(龜頭)에 가깝게 표현된 점은 통일신라 또는 고려 초기경의 제작으로 여겨진다. 특히 고려 초기에 제작된 전라남도 곡성 태안사 광자대사탑비(보물, 1963년 지정)의 귀두 모습 등 일련의 고려 초기 귀부와 닮은 점은 주목할 만하다.

참고문헌

『문화재대관』7 보물 5(한국문화재보호협회, 대학당, 1986)
『국보』5 공예(진홍섭 편, 예경산업사, 1985)
『국보』9 사원건축(신영훈 편, 예경산업사, 1985)
『한국의 미』23 금속공예(정영호 감수, 중앙일보사, 1985)
『호암미술관명품도록』(호암미술관, 1982)
주석
주1

전각지붕의 나무 끝이 비바람에 부식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나무를 덮어씌운 내구장식.

주2

선으로 새김. 또는 그런 그림이나 무늬. 우리말샘

주3

임금이 거처하는 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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