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사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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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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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
유물
통일신라시대의 사리장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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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통일신라시대의 사리장엄구.
개설

금동사리기의 출토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전라북도 남원시 여산면 남원사지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동사리기와 녹유리사리병, 그리고 사리 4점이 남아 있으며, 통일신라시대의 유물로 추정된다. 국립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내용

일반적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사리 외함은 방형(方形)이거나 건축의 형태를 지닌 전각형(殿閣形)이 다수를 차지하는데, 이 금동사리기는 여러 특징이 혼재된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아랫부분에는 불상의 대좌와 비슷한 단판복련(單瓣覆蓮)의 팔각 연화대가 있고, 그 위에 연화좌(蓮花座) 형태의 꽃술 받침을 하고 방형의 사리함을 올려 놓았다. 사리함의 네 면에는 여래 좌상을 배치하고 투각 기법으로 당초문을 장식하였다. 뚜껑의 테두리에는 장식물이 부착되었던 흔적이 남아 있고 전체적으로 선각과 어자문 기법으로 문양을 장식하였다. 사리함의 형태와 장식된 문양 및 기법 등에서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출토 사리장엄구를 떠올리게 한다.

두 유물은 대체로 유사한 모습이지만 뚜껑에 덧붙인 장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즉 가운데 부분에 큰 앙련(仰蓮)을 올리고 그 위로 솟은 찰주(擦柱: 불탑 꼭대기의 장식물을 지탱하는 기둥)에 이중의 보개(寶蓋)를 안치한 것이다. 한편 사리함을 받치고 있는 활짝 핀 앙련에서 사방으로 줄기가 뻗어 연꽃이 피어나는 것과 같은 형상을 표현하였다. 그 위에 있는 연화좌에는 무기를 들고 앉아 있는 신장(神將)이 등장하는데, 각각 따로 만들어 끼운 것이다. 신장상은 사리함에 모신 불사리(佛舍利)를 수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천왕(四天王)이나 팔부중(八部衆)이 호법신으로 사리장엄구의 외면에 표현된 예는 있지만 이 금동사리기의 경우처럼 특별한 구조를 갖춘 예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의의와 평가

사리기는 청동에 도금하였으며, 일부 변색되었지만 비교적 금빛이 잘 남아 있다. 선각, 투각, 어자문, 리베팅 등 다양한 장식 기법이 활용되었고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우수한 세공 기술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통일신라 사리장엄구의 특징을 공유하면서도 창의적인 외형과 장식이 돋보여,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유물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불사리장엄』(국립중앙박물관, 1991)
『국보 5: 공예』(진홍섭 편, 예경산업사, 1985)
「통일신라 사리장엄의 주요 양식에 대한 고찰」(신대현, 『신라문화제 학술발표논문집』 24,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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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신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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