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황남대총은 합장묘로 여러 점의 유리제 기물이 출토되었으며, 그 가운데 남분에서 확인된 병 1점과 잔 3점이 포함된 일괄 유물이다. 유리는 대체로 옅은 녹색이고 투명하다. 깨지기 쉽기 때문에 모두 파손이 심한 상태로 발견되었지만 현재는 복원되어 원형을 갖추고 있다.
병은 고대 그리스의 포도주 항아리인 오이노코에(oinochoe)에서 유래된 형태로, 구연부가 새의 부리처럼 생겨서 봉수형(鳳首形) 유리병이라고도 부른다. 목이 길고 계란형 몸통에 굽이 달렸으며, 손잡이가 있다. 전체는 연녹색을 띠고 구연부와 목에는 각각 1줄과 11줄의 청색 유리띠를 돌려 장식하였다. 손잡이는 청색 유리로 만들었는데, 마치 보수한 듯 금실이 감겨 있는 상태로 노출되었다. 당시 사용하면서 일부 파손되었고 수리된 기물을 고분에 부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기형은 동부 지중해 연안의 여러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제작되고 유행하였다.
세 점의 잔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모두 연녹색이며, 위는 넓고 밑은 좁아지는 형태이다. 두 점은 높이 10㎝ 정도로 비슷하고 다른 유물은 12.8㎝로 좀 더 크다. 두 점은 구연부와 굽 부분이 약간 다를 뿐 전체적인 형태도 유사하다. 큰 유리잔은 구연부를 둥글게 말면서 청색으로 장식하였고 몸통 윗부분에도 같은 색상으로 물결무늬의 띠 1줄을 둘렀으며, 아랫부분에는 격자문을 도드라지게 표현하였다.
유리 그릇은 불기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속이 빈 불대의 한쪽 끝에 녹인 유리액을 묻힌 후, 입으로 불어 형태를 만드는 방식이다. 기본적인 성형이 이루어지면 구연부를 띠 모양으로 말고 바닥을 늘려 굽을 만든다. 봉수병과 유리잔의 표면에 장식된 띠는 색유리를 녹여 가늘게 늘린 다음 표면에 붙인 것이다. 이때 열기를 가하면서 원하는 문양을 다듬고 마지막으로 기면을 매끄럽게 정리한다. 이처럼 띠를 덧대거나 구연부를 둥글게 말아 기물을 완성하는 방법은 초기 비잔틴 시기에 유행한 특징이다. 비교할 수 있는 유물은 지중해 동부 연안에 있는 팔레스타인과 북쪽의 시리아 지역에서 다수 확인된다. 유리 그릇의 형태와 제작 기법을 고려하면 문화 교류에 따른 전래품으로 추정된다.
일괄 유물로 출토된 봉수병과 유리잔은 세트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삼국시대 유리 공예에 대한 인식과 국제 교류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