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 천내리 용호석은 천내리 마을 인근의 제원대교 북쪽 500m 지점에 놓인 용석과 여기서 다시 북쪽으로 100m 지점에 있는 호석을 지칭하는데 모두 화강암으로 조각되었다. 이들 조각은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 지역으로 피신 온 공민왕이 자신의 무덤에 쓰기 위해 제작하였는데, 난이 진압되고 개경으로 돌아간 뒤에 그대로 방치된 것이라 전한다. 실제 공민왕릉에 사용된 호석을 보면 천내리 호석과 유사해 이것이 최소한 공민왕 시기에 제작되었음을 추론해 볼 수 있다. 용석에 묘사된 용도 고려청자 가운데 구룡형(龜龍形)이나 비룡형(飛龍形) 주전자에 등장하는 용머리와 흡사하다. 따라서 용호석은 고려시대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용석은 똬리를 틀고 위로 솟구치는 듯한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S’자형으로 심하게 구불거리는 몸이 실제 꿈틀거리는 뱀의 형상을 연상케 한다. 몸에는 커다란 비늘이 조각되어 있다. 중간중간 네 개의 발톱을 가진 날카로운 발이 구름, 혹은 파도를 묘사한 듯한 소용돌이 모양의 대좌를 움켜쥐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매우 역동적이다. 얼굴은 위아래로는 길지만, 앞에서 보면 폭이 매우 얇아 날카로운 인상을 준다. 포효하듯이 벌린 입안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으며, 여기서 상서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머리와 턱에는 갈기와 수염이 휘날리고 있다.
호석은 용석에 비해 해학적인 느낌이 강한데, 뒷다리는 완전히 굽히고 앞다리는 뻗어 앉아 있는 모습이다. 몸은 가늘면서 길쭉하여 날렵한 호랑이라는 인상을 준다. 표면에는 호랑이 털의 줄무늬를 양각으로 구불구불하게 조각하였다. 등과 뒷다리 부분에는 줄무늬 사이로 둥근 구슬 문양이 새겨져 있어 광화문의 해치상과 유사한 느낌이다. 얼굴을 한쪽으로 돌리고 입을 벌려 포효하고 있는 모습이 마치 웃고 있는 듯 보인다.
천내리 용호석은 민화적 풍모를 보이지만, 민간용이 아니라 고려왕실에서 사용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특히 그 양식적 특성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경복궁 근정전 월대의 석수 조각 등으로 계승되는데, 미술사에 있어 민족적 양식의 형성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