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도는 허리춤에 차거나 주머니에 넣어 다닌다 하여 패도(佩刀) 또는 낭도(囊刀)로 불렸다. 조선 전기의 경공장에 도자장(刀子匠)이 보이며, 고대의 부장품에서도 장도가 발견된다. 본디 성인 남녀가 일상의 필수품으로 장도를 요긴하게 썼으나 조선시대 후반에는 장도의 실제 쓰임에 장신구의 기능이 더해져 장도를 귀한 재료로 꾸미는 경향이 생겼다.
장도의 재료는 금, 은, 동, 철 외에도 대추나무, 향나무, 먹감나무, 쇠뿔, 옥, 호박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된다. 형태에 따라서는 을자도(乙字刀), 첨자도(籤子刀), 사각도, 팔각도 등으로 구분된다. 첨자도의 칼집에는 젓가락이나 귀이개, 과일 꽂이 등을 곁들여 쓸모를 넓혔다. 이 가운데 오동판을 검게 착색하여 은으로 무늬를 놓은 오동 상감 장도를 제작하는 기술은 현재 울산광역시의 무형유산인 장추남이 유일하다.
장추남(張秋男)은 1930년에 일본 나고야(名古屋)에서 태어나 해방되던 해인 1945년에 귀국하여 울산의 병영에 정착한 뒤 25세인 1947년에 담뱃대 제작에 입문하여 장도 제작과 병행하다가 점차 장도에 전념하였다. 오동 삼감과 은 상감 등 그의 기술적 특장은 울산 지역의 기술 전통을 충실히 이어받았으며, 2019년에 작고한 임원준 장인(匠人)의 뒤를 이어 울산광역시의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 제1호로 지정되었다.
병영은 경상좌병영이 있던 곳으로, 통영과 함께 조선시대 말까지 공예 전통이 활발하던 지역이었다. 병영 공방은 군영 내부의 수요와 국가의 공납을 위해 운영되었으며, 한때는 공방(工房)이 61개 소(所)에 달할 만큼 성업했다.
울산 장도장이 다루는 재료는 칼자루와 칼집을 모두 나무로 제작하는 목장도와, 황동 장도, 오동 상감 장도 등이 있다. 목장도는 단단한 대추나무나 향나무로 만들며 을자도나, 사각의 일자형 장도이다. 금속으로는 오동 상감 장도를 주로 제작한다.
오동 상감은 검게 착색된 오동판 위에 은을 녹여 장식하는 기술로 현재 울산 지역에만 남아 있는 특징적인 기술이다. 오동 상감은 본디 담뱃대의 연관에 주로 하던 장식 기술이나 병영의 장도장들이 처음으로 장도에 적용한 것은이다. 장도의 제작에는 합금, 오동판과 은판 만들기, 문양 새기기, 은상감, 오동 칼집과 칼자루 만들기, 장석 만들기, 오동 살리기, 장도 부속품 조립하기 등의 과정이 차례대로 진행된다.
오동은 진오동(구리와 금)과 가오동(구리와 은)으로 구분되며, 진오동은 구리와 금을 20:1의 비율로 합금한 상품과 16:1로 합금한 하품으로 나뉜다. 핵심 공정인 오동판의 착색을 위해서는 사포로 광을 낸 뒤에, 한 달 이상 삭힌 성인 남성의 오줌을 묻혀 따뜻하게 감싸 두면 서너 시간 뒤에 바탕이 검게 변하여 은색 상감과 대비를 이루게 된다.
장추남은 오동 상감에 특히 능하며, 칼집 전면에 태극무늬나 용무늬를 즐겨 새긴다. 현재 장도장은 국가 및 시도무형유산으로 4곳(국가, 울산, 경남, 경북)에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