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독립선교사 딕 요크(Dick York)의 영향을 받은 개신교 신자 권신찬과, 네덜란드 선교사 케이스 글래스(Case Glass)에 의해 입교한 유병언에 의해 시작되었다. 1963년 이들은 외국인 선교사들과 결별하여 독자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장인-사위의 관계였던 권신찬과 유병언은 대구·안양·서울·인천 등지로 활동무대를 넓혀나갔다.
이들의 주장이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권신찬 목사가 1964년부터 극동방송의 전신인 국제복음주의 방송에 방송목사로 부임하여 행한 설교 때문이다. 권신찬은 방송목사로, 유병언은 방송부국장으로 ‘은혜의 아침’이라는 프로를 진행하면서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였다. 이런 연유로 이들의 교단은 세칭 구원파로 알려져 있다. 권신찬은 기성교회에서 행하는 예배 의식, 십일조 헌금, 장로집사 제도, 주일성수, 새벽기도 등이 율법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율법과 죄책감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설교하였다.
이 설교는 한편으로는 청취자들의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다른 한편으로 개신교계 여러 교단들이 방송국에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져 1974년 7월 30일까지 권신찬의 측근 11명이 극동방송국에서 해임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때 청취자들을 중심으로 1969년부터 1982년까지 ‘평신도복음선교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교단의 형태를 갖춘 것은 1981년 11월 21일 서울 용산구 삼각지 서울교회당에서 전국의 책임자 248명이 모여 변우섭을 책임자로 선출하고 기독교복음침례회라는 명칭으로 창립총회를 열고, 문공부에 등록하면서부터이다. 유병언은 목사이자 사업가로 변신하여 삼우트레이딩과 주식회사 세모를 운영하였다.
교리는 기존 개신교회가 대부분 회개하고 예수를 영접하라는 가르침을 펴는 것과는 달리, 이미 예수의 보혈로 과거, 현재, 미래의 죄가 단번에 영원히 용서받았음을 깨달을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주일성수, 십일조, 과중한 직분을 지우는 예배당 건물 위주의 유형교회를 거부하고 무형교회를 강조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 교단은 주류 교단들로부터 신학적인 비판을 받기도 한다.
교단 조직은 총회 산하에 사무국과 총회 운영회를 두어 중앙집권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주요 활동을 보면 월간 『새길』, 월간 『만나』, 연간 『새순』, 그리고 월간 『코너 스톤(Corner Stone)』을 정기발행하고 있으며, 녹색회라는 단체를 결성하여 환경보존운동을 벌이는 등 사회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특히 해외포교에 눈을 돌려 많은 교세를 확장하고 있는데, 1996년에는 제20회 유럽수양회, 제11회 일본지역수양회, 제17회 미주지역수양회 등을 개최하였다.
1997년 현재 기독교복음침례회의 교세는 208개의 교회, 42명의 목사에, 교인의 총수는 11만 명 정도라고 한다. 현재 교단의 대표는 총회장인 김성일 목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