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고

  • 역사
  • 인물
  • 고려 전기
고려 전기에, 지추밀원사, 중서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 본관경주(慶州)
  • 사망 연도1123년(인종 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대사성 보문각학사|지추밀원사|중서시랑 평장사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신천식 (관동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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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전기에, 지추밀원사, 중서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경주(慶州). 신라 종실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를 지낸 김상기(金上琦)이며 형은 문하시중을 지낸 김인존(金仁存)이다. 부인은 경원 이씨, 사위는 최함(崔諴)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풍채가 아름다웠으며 문학으로 이름이 났다. 1104년(숙종 9) 11월에 밀진사(密進使)로서 요나라에 다녀왔으며, 1109년(예종 4)에 좌승선 지이부사(左承宣知吏部事), 1111년에는 예부상서 우간의대부(禮部尙書右諫議大夫)가 되었다.

다음 해에 지어사대사(知御史臺事), 1113년 7월에는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가 되고, 다음 해 3월에 다시 지어사대사가 되었다. 같은 해 12월에 지상서이부사 연영전학사(知尙書吏部事延英殿學士)를 지냈으며, 1117년 3월에는 문덕전학사(文德殿學士)로서 국자감시 시관이 되어 왕존(王存) 등 103명을 선발하였다.

같은 해 6월에는 대사성 보문각학사(大司成寶文閣學士)가 되어 국자감의 최고실력자가 되었고, 1118년에는 예빈경(禮賓卿)으로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과거를 관장하였으며, 다음해 6월에는 어사대부(御史大夫)로서 정치의 득실을 논하였다.

1122년 인종이 즉위하자 지추밀원사에 오르고, 다음 해 7월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郎平章事)로 별세하였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 「김고 처 이씨 묘지명(金沽妻李氏墓誌銘)」

  • - 「최함묘지명(崔諴墓誌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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