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귀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고려후기 전리판서, 동북면병마사, 첨의평리 등을 역임한 무신.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개경수복|화주·함주 수복
  • 사망 연도1366년(공민왕 15)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전리판서|동북면병마사|첨의평리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신천식 (관동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5년 12월 04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고려후기 전리판서, 동북면병마사, 첨의평리 등을 역임한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의 침입으로 복주(福州: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로 피난가게 된 왕을 호종하여 3등공신에 오르고, 1363년에 전리판서(典理判書)로서 당시 홍건적의 침입으로 함락된 개경(開京)을 수복하는 데 공을 세워 1등공신에 올랐다.

같은 해 5월에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로 화주(和州)에 진을 치고 동북을 방비하였다. 1364년 정월에 여진(女眞)의 삼선(三善) · 삼개(三介) 등이 홀면(忽面) · 삼살(三撒) 지역을 약탈하자 도지휘사 한방신(韓方信)과 함께 진격하였으나, 패전하여 후퇴하다가 철관(鐵關)에서 방어하였다.

다음 달에 동북면에서 이성계(李成桂)가 군사를 거느리고 오자 이에 합세하여 적을 격퇴시키고 잃었던 화주 · 함주(咸州) 등을 모두 수복하게 되었다. 이 싸움의 전공으로 왕으로부터 금대(金帶)를 받았다.

1365년 정월에 첨의평리(僉議評理)가 되었는데, 당시 신돈(辛旽)의 횡포에 대하여 이구수(李龜壽) 등과 같이 이를 탄핵하다가 도리어 신돈의 미움을 받아 같은 해 6월에 금주(金州)로 유배되었고, 이듬해 8월에 노산사(盧山寺)에서 신돈이 보낸 자객에 의하여 살해되었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주석

  • 주1

    : 호종 공신 녹훈 : 『고려사』 권40, 세가, 1363년(공민왕 12) 윤3월. "피난에 호종했던 공신들을 녹훈하다"

  • 주2

    : 개경 수복 공신 녹훈 : 『고려사』 권40, 세가, 1363년(공민왕 12) 윤3월. "개경을 수복한 공신들을 녹훈하다"

  • 주3

    : 함주 수복 : 『고려사』 권40, 세가, 1364년(공민왕 13) 2월. "이성계 군대가 삼선의 군대를 격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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