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김관오(金官五). 호는 우당(愚堂). 서울 출신.
1919년 보성학교 재학중에 3·1운동에 참가하여 선전문을 비밀리에 배부하다가 종로경찰서에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고 경성지방검사국으로 이송되었으나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그뒤 평강에 있는 친척집에 피신해 있다가 1921년 10월 상해로 망명하였다. 1922년 중국 윈난무강당[雲南武講堂]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1924년 졸업과 동시에 광저우[廣州]로 가서 군사학을 연구하면서 무기원조 획득에 노력하였다. 중국 국민혁명 제43군 및 중앙훈련단에서 장교로 근무하였고, 중국보병학교 고등군사반을 수료하였다. 1941년 한국독립당 충칭지구당부위원장(重慶地區黨部委員長)이 되었고 이어 한국광복군총사령부 창립에 참여하여 고급부관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임시정부 경위대를 조직, 그 대장에 취임하였으며, 1942년에는 임시의정원 강원도의원으로 활동하다가 광복 후 귀국, 국군에 입대하여 활동하다가 육군준장으로 예편되었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