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중강(重綱). 김진(金進)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충손(金衷孫)이고, 아버지는 김숭조(金崇祖)이며, 어머니는 최윤원(崔潤元)의 딸이다.
1519년(중종 14)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522년 정언이 되고, 1525년 헌납(獻納) · 지평(持平)이 되었으나, 이듬해 지평을 제수하자 서경(署經) 전에 사피(辭避)하였다 하여 대간의 탄핵을 받았다.
1528년 지평으로서 왜인들이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은 물건을 진상하고 자신들에게 유용한 물건을 무역해가는 것은 그 폐가 갈수록 심해질 것이니 무역량의 한계를 정할 것을 상소하였다. 1532년 헌납이 되고, 이듬해 재상적간어사(災傷摘奸御史)로 황해도에 파견되었다.
그 뒤 1534년 장령(掌令) · 교리 · 전한(典翰) · 집의(執義)를 역임하였다. 이듬해에 곧 죽었는데, 김기의 죽음을 뒤늦게 알게 된 중종은 시종(侍從)과 대간(臺諫)을 지낸 이에게 임금이 당연히 부의(賻儀)를 해야 했으나 하지 못했음을 결례로 지적하고 일찍이 대간 등의 벼슬로 시종한 사람의 죽음은 반드시 알리라고 지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