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광혁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사옹원봉사, 선공감직장, 장원서별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이칭
회원(晦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97년(선조 30)
사망 연도
1671년(현종 12)
본관
여흥(驪興, 지금의 경기도 여주)
주요 관직
사옹원봉사|선공감직장|장원서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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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사옹원봉사, 선공감직장, 장원서별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회원(晦遠). 할아버지는 공조판서 민여임(閔汝任)이며, 아버지는 서령(署令) 민계(閔枅)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열살 때부터 자제의 예도를 다하여 할아버지로부터 특히 사랑을 받았다.

병자호란 뒤 과거에 뜻을 버리고 재야에서 한가하게 지내며 세태를 초탈하려는 기상을 가지고 있었다. 조석윤(趙錫胤)이 이조판서로 있을 때 어떤 사람이 추천을 하자 세속에 더럽힐 수 없다는 이유로 벼슬을 시키지 않았다. 늦게야 벼슬길에 나아갔다.

사재감참봉을 필두로 사옹원봉사·선공감직장·장원서별제·통례원인의 겸 한성참군 등을 두루 거쳐, 황간현감(黃澗縣監)에 이르렀다. 정사를 돌봄에 어질고 너그러우면서도 강직하고 과단성이 있어 백성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았다. 또한, 송준길(宋浚吉)로부터도 민씨문중에서는 제일 훌륭하다는 평을 들었다.

참고문헌

『송자대전(宋子大全)』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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