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사간, 예조참의, 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1489년 지평, 1494년 장령을 거쳐, 1504년 사간·예조참의·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1507년(중종 2) 대사헌을 거쳐 1511년(중종 6) 공조참판으로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북경(北京)에 다녀왔다. 1513년 형조참판이 되었으나 곧 파직, 1515년 평안감사로 제수되었으나 우찬성 신용개(申用漑)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이듬해 다시 이조참판에 임명되었으나 인사권 행사에 적격자가 아니라는 대관(臺官)들의 주장으로 체직되었다. 1519년 기묘사화 때 한성부좌윤으로 조광조(趙光祖)를 비호하였다. 1523년 대마도주(對馬島主)의 세견선(歲遣船) 증액요구에 관한 의논에서는 저들의 요구를 들어주어 후환을 예방할 것을 건의하였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 『중종실록(中宗實錄)』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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