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영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형조참의, 부제학, 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길보(吉甫)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465년(세조 11)
사망 연도
1518년(중종 13)
본관
밀양(密陽)
주요 관직
형조참의|부제학|황해도관찰사
관련 사건
갑자사화|중종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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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형조참의, 부제학, 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길보(吉甫). 박절문(朴切問)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좌참찬 박중손(朴仲孫)이고, 아버지는 예조참의 박미(朴楣)이며, 어머니는 지돈녕부사 강석덕(姜碩德)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85년(성종 16)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홍문관에 들어갔다. 가문은 증조부 이래 4대에 걸쳐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또는 홍문관에 들어갔고, 형제 네 사람이 모두 문과 출신으로서 일세에 문명을 날렸다.

1497년(연산군 3) 지평(持平), 1501년 부응교(副應敎), 1503년 장령(掌令)·집의(執義), 1504년 홍문관전한(弘文館典翰) 및 직제학을 역임하였다. 이 해에 이세좌(李世佐)가 왕이 내린 술을 엎질렀으나 박소영이 불경죄로 탄핵하지 않았기 때문에 태(笞)를 맞고 진천에 유배되었다.

1506년에는 갑자사화에 관련되었다는 죄로 심한 고문을 받고 유배되었다가 1506년 중종반정으로 유배에서 풀려났다. 1509년(중종 4) 형조참의, 1513년 부제학(副提學)이 되었다. 이 때 이절(李茁)의 귀양지를 경기지역으로 옮긴 것과 유자광(柳子光)이 죽은 뒤 훈적(勳籍)을 회복하도록 한 조치를 부당하다고 논하였다.

1515년에 황해도관찰사, 1517년 참의가 되었으나 여자문제로 잠시 탄핵을 받았다. 1518년 함경도관찰사를 자원하여 나갔다가 임지에서 죽었다.

참고문헌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중종실록(中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목계일고(木溪逸稿)』
『이락정집(二樂亭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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