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뉴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자고(子固)
금헌(琴軒), 취헌(翠軒), 쌍계재(雙溪齋), 관후암(觀後庵), 상락거사(上洛居士)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436년(세종 18)
사망 연도
1490년(성종 21)
본관
안동(安東)
주요 관직
이조참판
정의
조선 전기에,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고(子固), 호는 금헌(琴軒)·취헌(翠軒)·쌍계재(雙溪齋)·관후암(觀後庵) 또는 상락거사(上洛居士). 김구덕(金九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오문(金五文)이고, 아버지는 김중엄(金仲淹)이며, 어머니는 조대림(趙大臨)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64년(세조 10) 녹사로서 춘장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황해·평안도의 땅을 개간한 공으로 벼슬에 나가 성균학유가 되었다. 곧 사복직장으로 옮겼으며, 이듬해 호조좌랑으로 『경국대전(經國大典)』 편찬 작업을 위해 이전(吏典)을 수교했고, 또 경차관으로 전라도에 파견되었다.

1466년 발영시·등준시에 을과로 급제하고, 이듬해 왕명으로 안효례(安孝禮)·유희익(兪希益) 등과 함께 영릉(英陵)에 가서 인지의(印地儀)를 시험하였다.

또한, 예문관직제학으로 『세조실록(世祖實錄)』 ·『예종실록(睿宗室錄)』 등을 편찬하는 데 기여가 컸다. 1470년(성종 1) 완성 단계에 있는 『경국대전(經國大典)』을 다시 수교하였다.

1472년 동부승지를 거쳐, 이듬해 참찬관으로 저화법(楮貨法) 사용을 강조하는 방안을 주장하였다. 이어 공조참판·충청도관찰사·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478년에는 대사헌으로 군비 확충을 위해 전라도 순천에 석보(石堡)를 쌓고 군인을 늘리며, 함경도 회령과 마도(馬島)·달량(達梁)·어란(於蘭) 사이에 보를 설치하고 식량 저축 등을 제의해 실천하게 하였다.

1479년 겸성균관동지사가 되고, 1480년 이조참판이 되었으나 곧 파직되었다. 1484년 행사직이 되고, 이듬해 왕에게 시를 지어 바쳐 칭찬을 받았다.

재주가 있고 학문을 좋아해 글을 잘 지었고, 행서와 초서 등 글씨에 능하였다. 거문고도 잘해 ‘3절(三絶)’이라 불리었고 그림 또한 잘 그렸다. 글씨로는 『해동명적(海東名跡)』·『초로관주(草露貫珠)』 등에 모간(模刊)한 것이 있다.

참고문헌

『세조실록(世祖實錄)』
『예종실록(睿宗室錄)』
『성종실록(成宗實錄)』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국조방목(國朝榜目)』
『용재총화(慵齋叢話)』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 (오세창, 계명구락부, 1928)
집필자
박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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