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김대지(金大地)·김치환(金致煥)·김인식(金仁植). 호는 일봉(一峰). 경상남도 밀양 출신.
1917년 만주의 길림(吉林)·봉천(奉天) 등지에서 국내로 내왕하면서 독립운동을 위한 비밀결사를 조직하려다 발각되어, 1918년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4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1919년 4월 10일 오흐 10시 프랑스 조계지 김신부로에서 29명의 독립운동가가 모여 임시의정원 회의가 개최되었을 때 소집 실무를 맡았다. 다음날인 4월 11일 오전 10시까지 이어진 임시의정원 회의에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대한민국 임시헌장이 선포되었다. 그 자리에서 각 부처의 차장을 인선할 때 이영근(李英根)이 교통차장에 추천했으나 선우혁과의 선거에서 낙선하고 내무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그해 11월에는 임시정부의 국내조사원으로 임명되어 경상남도 밀양의 책임자가 되었다.
1920년 곽재기(郭在驥)·이성우(李成宇)·김원봉(金元鳳) 등과 함께 상해 프랑스 조계지에 있는 김대지의 집으로부터 폭탄무기를 국내로 반입하였으며, 1923년 이후 김원봉이 이끈 의열단의 주요간부로 활약하였다.
1963년 대통령표창,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