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준

  •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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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의금부도사, 감찰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이칭김동기(金東起)
  • 봉곡(鳳谷)
  • 이식(而式)
인물/전통 인물
  • 본관광산(光山)
  • 사망 연도1661년(현종 2)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감찰
  • 출생 연도1573년(선조 6)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조계찬 (전 동아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5년 1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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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의금부도사, 감찰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광산(光山). 초명은 김동기(金東起). 자는 이식(而式), 호는 봉곡(鳳谷). 할아버지는 생원 김구수(金龜壽)이고, 아버지는 생원 김희지(金熙止)이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영창대군(永昌大君)의 살해와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모사건이 일어날 무렵 전주에 있었는데, 그곳 사람들이 광해군의 처사에 부화뇌동하여 찬성하는 소를 올리려 하자 죽음을 무릅쓰고 반대하였다. 1617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623년 인조반정 후 김장생의 추천으로 의금부도사로 임명되고, 감찰을 지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왕을 남한산성에 호종하였고, 적군이 후퇴한 뒤 경기도 양성현감 · 감찰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전주의 석계사(石溪祠)와 인봉사(麟峯祠)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송자대전(宋子大全)』

  • - 『우암집(尤庵集)』

주석

  • 주1

    : 사마 급제 : 『만력45년정사증광사마방목(萬曆四十五年丁巳增廣司馬榜目)』(한국국학진흥원[영덕 영양남씨 난고(蘭皐[南慶薰]) 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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