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만

  • 역사
  • 인물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때, 대한청년단연합회 교제부장, 광복군참리부 외무사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칭
  • 수봉(秀峰)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출생 연도미상
  • 출생지평안북도 의주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현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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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대한청년단연합회 교제부장, 광복군참리부 외무사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개설

호는 수봉(秀峰). 평안북도 의주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1919년 4월 2일 수진면 고향에서 3·1운동을 주도한 뒤 동지들과 같이 동삼성으로 망명하여, 만주 안동현(安東縣: 지금의 丹東市)에 설립된 독립운동단체인 임시의사회(臨時議事會)의 중심인물로 활동하였다.

김두만은 관전현(寬甸縣)을 근거지로 하여 압록강변 8개군의 교통국장으로 있으면서, 대한민국임시정부와의 교통통신의 임무를 맡아 정보교환, 군자금전달, 독립운동의 방향모색 등의 활약을 하였다.

1920년 대한청년단연합회의 교제부장 및 평안북도 독판부(督辦府) 교통국장 등으로 종사하였다. 1921년 5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에서 조덕진(趙德津) 등 임시의정원의원 11명의 연서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임시대통령 이승만탄핵안을 임시의정원에 제출한 바 있다.

1922년 10월 7일 김구(金九) 등과 같이 한국노병회(韓國勞兵會) 기초위원 선정에 참여하여 한국노병회의 회원이 되어, 임시정부를 외곽에서 지원하였다.

1924년에는 광복군참리부(光復軍參理部)의 외무사장(外務司長)에 취임하였으나 얼마 안 있어 사임하였다. 1926년 3월 10일 한국노병회 제20회 정기이사회에서 2년 이상 회비를 납부하지 않아 이 회의 회칙에 의거, 만장일치로 제명되었다.

상훈과 추모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대한민국임시정부사』(이현희, 집문당, 1982)

  • - 『3·1운동사론』(이현희, 동방도서, 1979)

  • - 『독립운동사자료집』 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 - 『한국독립운동사』 1(국사편찬위원회, 1965)

  • - 『朝鮮民族運動年鑑』(在上海日本總領事館,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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