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기』에는 ‘김파진한기무(金波鎭漢紀武)’로 적고 있는데, 이로 보아 그의 관등은 파진찬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414년(실성왕 13) 일본 윤공주(允恭主: 19대 왕)의 초청을 받고 일본에 건너가 윤공주의 병을 치료한 뒤 후한 상을 받고 신라로 돌아왔다. 『일본서기』에서는 윤공주를 치료한 김무의 의술에 대하여 “그가 깊이 약방(藥方)을 안다.”라고 적고 있다.
이 기록이 너무 간단하여 약방의 내용을 알기 어려우나, 근대 일본의 학자들은 이 약방이 신라가 중국에서 배워온 한약방일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당시 중국과 신라와의 관계, 그리고 고구려와 백제 의학의 성격 등을 고려하여 볼 때 일본학자들의 주장은 근거가 매우 약하다.
김무의 약방은, 당시 고구려·백제가 중국의술을 수입하기 시작하던 시기였으므로, 이들 나라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던 중국의술의 영향 아래 신라 고유의 전통에 기초하여 발전한 독자적 방법에 의한 것이었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