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형조판서, 판의금부사, 상호군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853년 이조참판에 특진된 뒤 수원부유수 · 대사성을 거쳐 1856년 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 1857년 형조 · 예조의 판서, 한성부판윤 · 대사헌 · 우참찬 등을 역임하고, 그해 대호군(大護軍)으로 산실청권초관(産室廳捲草官)과 안태사(安胎使)를 겸하였다. 1862년 이조판서 · 좌참찬 · 공조판서를 지내고 기로사(耆老社)에 들어갔다.
이듬해 한성부판윤이 되었으나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실권을 잡자 사임하였다. 그러나 다시 흥선대원군에 의해 중용되어 1864년(고종 1) 형조판서가 되고, 1868년에는 이조판서에 임명되었다. 그 뒤에도 공조판서 · 형조판서 · 판의금부사(判義禁府使) · 상호군(上護軍) 등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 『철종실록(哲宗實錄)』
- 『고종실록(高宗實錄)』
- 『기년편고(紀年便攷)』
- 『국조방목(國朝榜目)』
- 『청선고(淸選考)』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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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진사 급제 : 『숭정기원후4무자식사마방목(崇禎紀元後四戊子式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일산古602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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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방목(國朝榜目)』 卷之十一(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1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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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형조판서 임명 : 『고종실록』 1권, 1864년(고종 1) 4월 29일. "김병교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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