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개항기 갑신정변과 관련된 정객.
생애 및 활동사항
1884년 10월 1일에 개화당 인사들과 묘동(廟洞)에 있는 이인종(李寅鍾)의 집에 모여 구체적인 거사계획을 수립하고 술잔을 나누며 결의를 다졌다.
거사 당일인 12월 4일(음력 10월 17일) 이석이(李錫伊) 등과 함께 인정전(仁政殿)에 화약을 장치하였으며, 신복모(申福模) 등 40여 명의 장사패와 금호문(金虎門)을 중심으로 비상선을 쳐서 도주하는 수구 사대당 대신들을 체포, 살육을 자행하였다.
거사 후에는 경우궁(景祐宮) 경비를 맡아 개화당 인사들의 신변을 호위하였다. 그러나 갑신정변이 삼일천하로 실패하자 체포되어 대역부도죄로 능지처참당하였다.
참고문헌
- 『고종실록(高宗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갑신일록(甲申日錄)』
- 『개화당연구』(이광린, 일주각, 1980)
- 「갑신정변」(류홍렬, 『한국사』 16, 국사편찬위원회, 1975)
- 「개화당의 형성시기」(이현희, 『한국사』 16, 국사편찬위원회,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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