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4년에 김옥균(金玉均)·박영효(朴泳孝)·서광범(徐光範) 등의 급진개화당 인사들이 갑신정변을 추진할 때 모의과정에서부터 적극 참여하였던 씨름장사이다.
1884년 10월 1일에 개화당 인사들과 묘동(廟洞)에 있는 이인종(李寅鍾)의 집에 모여 구체적인 거사계획을 수립하고 술잔을 나누며 결의를 다졌다.
거사 당일인 12월 4일(음력 10월 17일) 이석이(李錫伊) 등과 함께 인정전(仁政殿)에 화약을 장치하였으며, 신복모(申福模) 등 40여 명의 장사패와 금호문(金虎門)을 중심으로 비상선을 쳐서 도주하는 수구 사대당 대신들을 체포, 살육을 자행하였다.
거사 후에는 경우궁(景祐宮) 경비를 맡아 개화당 인사들의 신변을 호위하였다. 그러나 갑신정변이 삼일천하로 실패하자 체포되어 대역부도죄로 능지처참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