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언양(彦陽). 아들은 김취려(金就礪)이다. 1173년(명종 3) 동북면병마사 김보당(金甫當)의 반무신란(反武臣亂)이 실패하면서 많은 문신들이 살육되었다.
그러자, 당시 낭장으로서 무신 집정자였던 정중부(鄭仲夫)에게 문신과 무신 가문간의 통혼만이 서로의 알력을 해소하고 후환을 없애는 문제해결의 방안임을 건의, 살육의 화를 중지하게 하였다.
1186년 장군으로서 예부시랑을 겸하였는데, 무신란 이후 무신으로서 문한(文翰)을 관장하는 유관직(儒官職)까지 겸한 최초의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