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렴 ()

청주 송천서원 전경
청주 송천서원 전경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에, 안렴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안동(安東)
주요 관직
안렴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고려 후기에, 안렴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평장사(平章事) 김방경(金方慶)의 후손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어 문장에 능하였다. 공민왕 때 과거에 급제, 벼슬이 안렴사(按廉使)에 이르렀다.

정몽주(鄭夢周)·이색(李穡)과 교분이 두터웠을 뿐만 아니라 직간으로도 유명하였다. 신돈(辛旽)이 집권하였을 때 공경대부들이 모두 신돈을 받들고 왕이 총애하자, 상소하여 신돈이 반드시 뒤에 정사를 어지럽히고 사직을 망하게 할 것이라고 간하였다.

당시 정추(鄭樞)·이존오(李存吾) 등이 신돈을 탄핵하다 쫓겨난 뒤여서, 조야가 감히 신돈의 일을 말하지 못하였는데 홀로 이를 논하여 직언했다는 소리가 높았다. 고려가 망하자 청주에 은퇴, 태조가 여러 차례 좌사간에 임명하였으나 응하지 않고, 도산(陶山)으로 옮겨 은거하였다.

참고문헌

『고려명신전(高麗名臣傳)』
관련 미디어 (1)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