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후기에, 삼사좌윤, 성균관대사성, 판전교시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375년(우왕 1) 삼사좌윤(三司左尹)이 되었을 때, 이인임(李仁任) 등 권신들이 북원(北元)이 보낸 사절을 맞으려 하자, 이숭인 · 정도전(鄭道傳) 등 당시 친명파와 함께 도당(都堂)에 상서해 이를 반대하다가 죽주(竹州)에 귀양갔다. 뒤에 여흥(驪興)으로 옮겨 강호에 노닐며 거처하는 곳을 육우당이라 이름하고, 시와 술로 날을 보냈다.
1381년(우왕 7)에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가 되어 왕의 절제 없는 거둥을 경계하는 글을 올려 직간하였다. 이듬해 성균관대사성이 되었다가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가 되었다. 1384년 행례사(行禮使)가 되어 명나라에 갈 때, 국서와 함께 백금 1백냥과 세저(細苧) · 마포 각 50필을 가지고 갔다. 요동에서 체포되어 명나라 서울 남경(南京)으로 압송되었는데, 명나라 태조의 명으로 대리위(大理衛)에 유배되던 도중 노주 영녕현(瀘州永寧縣)에서 병사하였다.
저술활동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목은집(牧隱集)』
- 『성수시화(惺叟詩話)』
- 『경수당집(警修堂集)』
- 『한국한문학사』(이가원, 민중서관, 1961)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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