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전기 병조판서, 평안도도절제사, 동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458년 행회령진병마절제사(行會寧鎭兵馬節制使)가 되었다. 이 때 야인이 대규모로 두만강을 건너 장성(長城)에 침입하자 몸소 적진을 뚫고 들어가 적 20여 명의 목을 베고 돌아왔다. 이 공으로 가정대부(嘉靖大夫)에 오르고 옷감이 하사되었다.
1460년 회령절제사 · 판회령부사를 거쳐 한성부윤이 되었다. 그런데 부임하기 전에 야인이 또 침입하자, 영의정 신숙주(申叔舟)가 함길도도체찰사로 취임하여 이를 토벌하게 했으며, 신숙주에 의해 유임이 재청되었다. 그리하여 다시 북방 모련위(毛憐衛)의 야인을 맞아 싸워 추장 이하 수십 명을 베는 등 크게 전공을 세우고 돌아와 판한성부사가 되었다.
1461년 병조판서가 되어 직접 전라도의 여러 섬을 수색해 역(役)을 피해 숨어사는 자들을 잡아내기도 하였다. 이듬해 처남 이극배(李克培)가 이조판서가 되자 장령 유계번(柳季藩)은 한가족이 정권을 모두 행사한다 하여 반대했으나 세조의 묵인으로 유임되었다. 곧 평안도도절제사로 나갔다가 1463년(세조 9) 병으로 돌아와 동지중추원사를 역임하였다. 성격이 깨끗하고 곧아 모든 일에 공정했으며, 당시 무장 중에서 가장 독서에 열중하는 사람으로 꼽혔다. 시호는 장절(壯節)이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 『단종실록(端宗實錄)』
- 『세조실록(世祖實錄)』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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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공신 책록 : 『세조실록』 8권, 1457년(세조 3) 8월 12일. "정연·김혼지·권지 등은 원종 공신 2등으로 정흥손은 3등으로 녹훈하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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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시호 추증 : 『세조실록』 32권, 1464년(세조 10) 2월 10일. "동지중추원사 김사우의 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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