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성, 부제학, 도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71년에 지평 어석령(魚錫齡)으로부터 이조참의 · 전라도관찰사 재임시의 부정과 탐학상(탐욕이 많고 포악함)을 탄핵받았으나 영조의 옹호로 겨우 면할 수 있었다. 그 뒤 마음이 편하지 않던 중 비변사당상으로 병을 핑계로 차대(次對: 정기적으로 왕에게 정무를 아뢰는 일)에 나오지 않았다다.
이로 말미암아 영조의 노여움을 사서 한때 청주로 귀양을 가기도 했다. 곧 풀려나기는 하였으나 정조 즉위년에 홍인한(洪麟漢) · 정후겸(鄭厚謙) 등의 역모에 가담하였다는 것으로 양사(兩司)의 집요한 탄핵을 받았다. 한때는 정조의 비호로 대사헌에 기용되기도 하였으나 결국 1777년(정조 1) 지도(智島)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청선고(淸選考)』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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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진사 급제 : 『숭정3경오식년사마방목(崇禎三庚午式年司馬榜目)』(규장각한국학연구원[想白古351.306-B224s-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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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五(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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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탄핵 내용 : 『정조실록』 1권, 1776년(정조 즉위년) 7월 16일. "김상익이 자신의 원통함을 호소하여 상소하자 더 정진할 것을 비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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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지도에 유배 : 『정조실록』 3권, 1777년(정조 1) 4월 16일. "양사의 상소에 따라 송형중을 신지도에 안치하고 김상익을 지도에 정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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