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현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우참찬, 좌참찬, 판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위사(渭師)
경대(經臺), 노헌(魯軒)
시호
문헌(文獻)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11년(순조 11)
사망 연도
1890년(고종 27)
본관
광산(光山)
주요 관직
판돈녕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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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우참찬, 좌참찬, 판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위사(渭師), 호는 경대(經臺) · 노헌(魯軒). 김장생(金長生)의 9대손이며, 김상악(金相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기진(金箕晉)이고, 아버지는 김재곤(金在崑)이며, 어머니는 유경주(兪擎柱)의 딸이다. 정약용(丁若鏞) · 홍석주(洪奭周) · 김매순(金邁淳)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27년 진사가 주1 1859년(철종 10) 군수로서 증광 문과에 갑과로 주2, 1860년 대사간을 지냈다. 고종 때에 들어서도 1864년(고종 1) 대사간을 거쳐 이조참의 · 승지 · 대사성 · 이조참판 · 예문제학 · 홍문제학 · 도총관 · 공조판서 · 예조판서 · 경기도관찰사 · 평안도관찰사 · 대사헌 등의 중요직을 역임하였다.

1882년 시강원우부빈객(侍講院右副賓客)과 우참찬 · 좌참찬 · 판돈녕부사 등을 지냈으며, 1885년고종에게 세 차례나 치사(致仕)하기를 청하여 봉조하(奉朝賀)가 주3. 그 뒤 제술관 등을 지내고, 1887년에는 소과의 시관(試官)을 맡아보았다. 문장에 능하여 왕실에서 필요한 전문(箋文) · 죽책문(竹冊文: 대나무 간책에 새기는 옥책문) · 옥책문(玉冊文: 제왕 · 후비 등의 호를 올릴 때 쓰는 德을 읊은 글) · 행장 · 악장문(樂章文) 등을 저술하였다. 시호는 주4. 문집으로 『경대집(經臺集)』이 있다.

참고문헌

『철종실록(哲宗實錄)』
『고종실록(高宗實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일성록(日省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주1

사마시 급제 : 『숭정기원후4정해경과증광사마방목(崇禎紀元後四丁亥慶科增廣司馬榜目)』(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413])

주2

문과 급제 : 『국조방목(國朝榜目)』 卷之十一(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11655])

주3

봉조하 역임 : 『고종실록』 22권, 1885년(고종 22) 8월 13일. "건청궁에 나가서 봉조하 김상현의 사전을 받고 사찬하도록 명하다"

주4

시호 추증 : 『고종실록』 28권, 1891년(고종 28) 3월 16일. "이재원 등 14명에게 시호를 내리다"

집필자
박정자(전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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