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우참찬, 좌참찬, 판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882년 시강원우부빈객(侍講院右副賓客)과 우참찬 · 좌참찬 · 판돈녕부사 등을 지냈으며, 1885년고종에게 세 차례나 치사(致仕)하기를 청하여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그 뒤 제술관 등을 지내고, 1887년에는 소과의 시관(試官)을 맡아보았다. 문장에 능하여 왕실에서 필요한 전문(箋文) · 죽책문(竹冊文: 대나무 간책에 새기는 옥책문) · 옥책문(玉冊文: 제왕 · 후비 등의 호를 올릴 때 쓰는 德을 읊은 글) · 행장 · 악장문(樂章文) 등을 저술하였다.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문집으로 『경대집(經臺集)』이 있다.
참고문헌
- 『철종실록(哲宗實錄)』
- 『고종실록(高宗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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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사마시 급제 : 『숭정기원후4정해경과증광사마방목(崇禎紀元後四丁亥慶科增廣司馬榜目)』(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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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방목(國朝榜目)』 卷之十一(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1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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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봉조하 역임 : 『고종실록』 22권, 1885년(고종 22) 8월 13일. "건청궁에 나가서 봉조하 김상현의 사전을 받고 사찬하도록 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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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시호 추증 : 『고종실록』 28권, 1891년(고종 28) 3월 16일. "이재원 등 14명에게 시호를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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