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에, 사의대부, 국자감좨주, 전법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284년(충렬왕 10)
주요 관직
사의대부|국자감좨주|전법판서
관련 사건
정화원비 압량사건
목차
정의
고려 후기에, 사의대부, 국자감좨주, 전법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1271년(원종 12) 세자 왕심(王諶: 충렬왕)이 원나라에 볼모로 갈 때 호부낭중으로 시종하였으며, 이듬해 충렬왕을 따라 귀국하여 사의대부(司議大夫)가 되었다.

재임 중 왕의 인사관리에 반대하여 한때 파면되었다가, 1277년 국자감좨주(國子監祭酒)로서 원나라에 하정사(賀正使)로 파견되었다. 그 뒤 전법판서(典法判書)에 올랐고, 1284년에는 왕의 총애를 받던 정화원비(貞和院妃)의 압량사건(壓良事件)을 왕지(王旨)에 따라 판결하기도 하였다. 이때 잘못된 판결로 병이 나서 죽은 것처럼 알려지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역옹패설(櫟翁稗說)』(이제현)
집필자
윤용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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