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대교, 봉교, 예조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백후(伯後), 호는 백천(柏川). 김종윤(金宗胤)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충정(金忠貞)이고, 아버지는 예조판서 김첨경(金添慶)이며, 어머니는 김보(金溥)의 딸이다. 이산해(李山海)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90년(선조 23)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 다음 해에 대제학 유성룡(柳成龍)의 추천으로 이조좌랑 이유징(李幼澄)과 함께 독서당에 들어갔다.
이어서 예문관검열이 되었는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관으로서 선조를 호종하였다. 1599년 검열 · 대교(待敎) · 봉교(奉敎) 등을 역임하고 예조좌랑에 이르렀으나, 1602년 옹진현령으로 좌천되었다. 자신까지 3대가 모두 급제하고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는 등 문명을 떨쳤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국조방목(國朝榜目)』
- 『대동야승(大東野乘)』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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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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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독서당으로 선발 : 『선조실록』 25권, 1591년(선조 24) 8월 8일. "독서당에 이유징·조정·이상홍·김선여·기자헌 등을 선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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