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원주목사, 종부시정, 금산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때 정온(鄭蘊)이 남의 말을 듣고 잘못 탄핵한 일이 있었으나, 원망하지 않았고 뒤에는 오히려 좋은 친구가 되었다. 정온이 늘 사람들에게 ‘오늘날에 드문 선비’라고 극찬하였다.
인조반정 후에는 서산군수 · 장령(掌令) · 필선(弼善), 상의원 · 장악원 · 제용감 · 사옹원의 정, 판교(判校) · 원주목사 · 종부시정(宗簿寺正) · 금산군수 등을 지냈다. 관직에 있을 때는 백성들을 온화하게 대하고 형벌을 절제하여 원망하는 사람이 없었다. 세상을 떠난 후에 도승지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 『동주집(東洲集)』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주석
-
주1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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